"높아서 더 무섭다"…더 커지는 고층건물 지진 공포

입력 2017-11-16 13:42
"높아서 더 무섭다"…더 커지는 고층건물 지진 공포

전문가 "지진피해 건물 90%는 5층 이하로 실제 저층이 더 위험할 수도"

(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 "의자가 덜덜 떨리는 흔들림과 함께 지진이 발생한 것을 느꼈지만, 너무 무서워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동료들과 공포에 떨기만 했죠. '부산에 지진이 나면 대피도 못 하고 죽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63층 건물인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일하는 한 여직원은 지난 15일 지진 당시 공포를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고층건물에 있다 보니 지진동을 느끼고 아래를 내려다보게 됐는데 정말 대피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며 "대피 안내방송도 늦게 나와서 무서웠다"고 전했다.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박모(42·여) 씨는 "작년 경주 지진 때보다 어제 지진에 아파트가 더 많이 흔들려 울렁거림과 함께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며 "당장 저층으로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고층건물에서 일하는 김모(35) 씨는 "건물이 옆으로 흔들리는 것을 느끼자마자 '삐'하는 경고음과 함께 휴대폰에서 긴급재난문자가 와서 지진임을 알았다"며 "대피해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층건물의 특성 때문에 저층보다 고층에 있는 사람이 지진 공포를 더 느끼게 마련이지만 제대로 공사만 이뤄졌다면 실제로는 고층건물이 저층보다 지진에 훨씬 잘 견딘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같은 지진의 충격을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고층 건물이 저층 건물보다 훨씬 더 많이 흔들린다.

흔들렸다가 원상태로 돌아오는 시간을 건물의 주기(週期)라고 하는데 저층은 주기가 짧아 짧은 시간에 여러 번 흔들리면서 구조에 영향을 받지만 고층건물은 주기가 길어 많이 흔들리는 것 같지만, 천천히 흔들려 실제 지진의 영향은 덜 받는다는 얘기다.



지진파의 주기가 0.5초 전후지만 고층으로 올라가면 4∼5초 정도로 길어진다. 해운대의 80층짜리 초고층은 주기가 5∼6초에 이른다.

또 60층 이상 초고층 건물 대부분은 규모 6.0∼6.5의 강진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구조 안전성 면에서는 거의 완벽한 수준을 유지한다.

부산대 건축공학과 오상훈 교수는 "같은 조건에서 10층 아파트가 좌우로 1㎝ 흔들리면 50층짜리 아파트 50층은 6∼7㎝까지 흔들리지만, 천천히 흔들려 구조에 영향을 덜 받는다"며 "고층건물이 일반적으로 저층건물보다 지진에 잘 견디지만, 비구조재가 내진 설계돼 있지 않으면 지진 충격으로 승강기나 가스 배관, 천장재 파손이나 추락에 따른 2차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구조재란 건물 기둥 같은 구조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승강기와 가스 배관, 기계설비, 천장재, 외벽, 타일 등을 말한다.

2015년 기준 전국에 들어선 30층 이상 고층건물은 1천478개에 이른다.

부산이 307개로 가장 많고 경기 302개, 서울 269개, 인천 247개 등 순이다.

osh998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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