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제집 어디?" 학원가 버린 책 '발굴' 소동…서점도 북적
시간 맞춰 혼자 모의고사 치르기도…1주일 강의·모의고사 무료제공 학원도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현혜란 김예나 이효석 기자 = 경북 포항 지진 여파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늦춰지자 서울시내 대입 학원가는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전날 버린 문제집을 도로 찾는 '발굴작업'을 벌였다. 일부 학원은 1주일간 강의와 모의고사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고, 학생들의 불안을 잠재우고자 심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16일 오전 8시20분께 서울 중구의 한 재수종합반 학원 6층 옥상에는 책 수백 권이 쌓인 가운데 학생 10여명이 전날 버린 책을 도로 찾느라 분주했다.
일부 학생은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책으로 바다를 이룬 모습을 보고 황당한 듯 친구에게 '헤엄쳐서 찾아야겠다'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자신이 봤던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듯 한 권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10권 가까이 찾아내 돌아가는 학생도 있었다. 쓰레기봉투 속에담겨 묶인 책을 보며 '저기 내 책이 있을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당장의 중압감에서 잠시 벗어났기 때문인지 책을 찾는 학생들은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분위기였다.
이처럼 학원 옥상에 버린 책이 쌓인 것은 전날 학원이 '버릴 책이면 청소하시는 분들 편하게 옥상에 버리라'고 안내했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들은 학원 주변 흡연장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내가 여기를 또 오다니'라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옥상에서 책을 찾고 있던 최광원(20)씨는 "개념정리를 해둔 문제집을 찾고 있는데 잘 안 보인다"며 "수능이 연기돼 당황스럽지만 한 주 더 개념 살펴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모(20)씨는 "책을 다 버린 탓에 문제집 다시 사러 동네 서점에 갔더니 고등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더라"며 "포항은 건물도 무너질 정도였다고 하니 잘한 일 같긴 하지만 정작 1주일 동안 공부도 잘 안 될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
이 학원 원장은 "1주일 동안 학생들에게 무료로 추가 수업과 모의고사를 시행하고 식사도 제공하기로 했다"며 "'수능 리듬'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능 시간표에 맞춰 수업·자습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학원은 수능 직후 예정됐던 대규모 입시설명회도 전면 취소하고 1주일 뒤로 재조정하고 있다.
동작구 노량진의 대형학원에서도 자습실 뒤에 버려진 책 무더미에서 자신의 문제집을 찾아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이 버린 책 가운데 정리가 잘 된 것을 찾는다며 뒤적이는 수험생도 있었다.
몇 년간 대입 시험을 치러왔다는 공모(26)씨는 "어제는 발표를 보고 혼란스러웠지만, 오늘은 진정돼 다시 공부할 준비가 됐다"며 "학원에 오니 학생들이 '도굴꾼'처럼 책더미에서 책을 찾고 있던데 나는 책을 버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일부 대형학원은 학생들에게 자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1주일짜리 특강을 진행한다는 전단 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심리 안정을 위해 '마음집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원도 있었다.
학생들은 자습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다가 학원에 남아있는 강사들에게 잘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는 등 1주일 늦춰진 마무리 공부를 했다.
인근 카페에서 시간에 맞춰 언어영역 문제를 풀던 재수생 A씨는 "원래 오늘 수능을 보는 날이었으니 시간표에 따라 모의고사를 풀고 있는데 사실 집중이 잘 안 된다"며 "연기 발표를 듣기 전에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미뤄지니 고통받는 시간이 더 늘어난 것 같아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다"고 멋쩍게 웃었다.
양천구 목동의 재수종합반 학원은 오전 8시부터 자습실을 열었다. 자습실은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수험생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대부분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공부에 집중했다. 실전 모의고사를 푸는 학생들이 많았다.
삼수생인 안모(21)씨는 "경영학과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뤄지니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컨디션 관리 하면서 일찍 잠까지 잤는데 밤늦게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불평했다.
재수생 김모(20)씨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한국사 과목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상태라 시간이 생겨 기쁘기도 하다"면서도 "지진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교무실 역할을 하는 학원관리실 전화통은 1분에 2∼3통씩 전화가 와 불이 날 지경이었다.
학원 학생관리과장은 "학원 강의 상당수는 이미 종강을 해 어제 출근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많았고 나온 분들도 대부분 조기퇴근했다"며 "그러다 뉴스를 보고 부랴부랴 학원으로 와서 긴급회의를 하고 학생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등 정신이 없었다"고 전날 저녁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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