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넘치는 천상의 삶"…가티-RCO가 빚어낸 말러교향곡

입력 2017-11-16 11:38
"생기 넘치는 천상의 삶"…가티-RCO가 빚어낸 말러교향곡

'다니엘레 가티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이토록 흥미진진한 천국의 모습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천상의 삶을 담은 말러의 교향곡 제4번의 각 악장은 각기 새롭고 재미난 단편소설처럼 흥미로웠다. 흔히 천국은 재미없다고들 하지만, 가티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가 말러의 음악을 통해 구현해낸 천국은 '재미있는 천국, 생기 넘치는 천국'이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로열 콘세트르헤바우 오케스트라(이하 RCO)는 다니엘레 가티를 상임지휘자로 맞아들인 후 새롭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고급스럽고 잘 다듬어진 음색을 지닌 RCO의 연주는 완성도 높기로 유명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모범생 같은 연주로 밋밋하다는 인상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가 이끄는 RCO는 달랐다.

지난 1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진 가티와 RCO의 연주는 결코 고지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예측할 수 없는 자유분방함이 돋보인 연주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은 설득력 있는 연주였다. 이는 말러의 작품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그 핵심적인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해낸 가티의 지휘 덕분이라 생각된다.

말러의 교향곡 제4번의 악보를 보면 템포 변화가 급격하고 강약 변화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연주 기술상의 문제나 음악의 흐름 상 이를 실제 연주로 정확하게 구현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가티는 악보에 나타난 템포와 강약 변화를 더욱 강조했을 뿐 아니라, 주선율에 가려 잘 들리지 않던 반주 음형이나 색다른 악기의 음색을 부각하며 새롭고 신비로운 음향세계를 펼쳐 보였다.

경쾌한 썰매방울 소리로 시작된 제1악장에서 제1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주선율 못지않게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연주하는 반주 음형도 하나의 생명체처럼 생생하게 살아 올랐고, 전체 오케스트라가 급격히 빨라졌다가 갑자기 느긋하게 연주를 이어가는 부분도 어색하게 느껴지기는커녕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진진했다.

제2악장의 다채로운 음향세계는 더욱 놀라웠다. 하프의 악센트가 그처럼 강력할 수 있음을, 목관악기의 장식음이 그토록 재미있게 들릴 수 있음에 새삼 감탄스러웠다. 또한 제3악장 말미에서 천국의 문이 열리는 순간, 두 개의 북채를 동시에 내리치며 천국의 도래를 알리는 팀파니의 타격이 그토록 통쾌하게 느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천국 문이 열리는 순간 무대로 등장한 소프라노 서예리는 '천상의 삶'을 노래한 제4악장에서 맑고 깨끗한 음색으로 천국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잘 표현해내며 깊은 인상을 전해주었다. 서예리의 음성은 말러 교향곡 4번의 명반으로 유명한 소프라노 에디트 마티스를 닮은 기품과 청아함을 지니고 있었고, 정확한 딕션 덕분에 전달력이 뛰어났다. 다만 초반에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이 다소 좋지 않았고 오케스트라에 비해 음량이 다소 작았던 것이 옥에 티였으나 서예리만큼 말러 교향곡 4번에 잘 어울리는 소프라노도 없을 것 같다.

이번 공연 전반부에는 말러의 교향곡 제4번의 고전적인 성격과 잘 어울리는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제1번이 연주되었다. 협연자로 나선 타티아나 바실리바의 연주는 깔끔하기는 했으나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해줄 만큼 독창적인 연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잘 다듬어진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바실리바의 음색은 조화를 이루며 고전음악의 단아한 맛을 전해줬다.

가티와 RCO의 연주회는 16일 저녁 8시에 롯데콘서트홀에서 계속된다. 16일 공연에선 세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인 프랑크 페터 짐머만의 협연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연주되고, 공연 후반에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이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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