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우리 며느리란다' 병마와 싸우는 이주여성 돕는 주민들

입력 2017-11-14 16:38
'너는 우리 며느리란다' 병마와 싸우는 이주여성 돕는 주민들

필리핀에서 이주한 40대 신부전증 투병…십시일반 치료비 모아

(남원=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예순 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 주민들이 병마와 싸우는 결혼이주여성 치료비 마련을 위해 십시일반 성금을 모은 사실이 알려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레르마피데리로(48·필리핀)씨는 2004년 남편 최낙윤(53)씨와 결혼해 전북 남원시 보절면 서당마을로 이주했다.

그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공장에서 일하며, 뇌전증으로 몸이 불편한 남편과 시어머니(86)를 극진히 보살폈다.



금실이 좋은 부부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하고 씩씩한 두 아들을 낳았다. 온 마을의 경사였다.

주민들은 고된 타향살이에도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생활하는 그를 아끼고 예뻐했다.

행복했던 가정에 시련이 닥친 것은 3개월 전이다.

레르마피데리로씨는 "신장 기능이 10%밖에 남지 않아 생명이 위험하다. 이식하지 않으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는 병원진단을 받았다.

그가 병마와 싸운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앞다퉈 꼬불쳐 둔 쌈짓돈을 내놨다.

노인들은 출향한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 타지에서 온 며느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보절면사무소도 25개 마을 이장단 회의를 소집해 사정을 설명하고 성금 마련에 힘을 보탰다.

레르마피데리로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향우회 등을 통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치료비 모금 행렬이 이어졌다.

모금 한 달 만에 2천만원이 넘는 치료비가 모였고 라면과 쌀 등 생필품도 전해졌다.

마침 필리핀에 거주하는 레르마피데리로씨 가족 중 한 사람이 신장을 주기로 했다는 희소식도 들렸다.

사연을 접한 전북대병원은 '병마와 싸우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신장이식 수술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보절면에 전달했다.

쌀쌀한 날씨를 물리친 훈훈한 온정에 힘입어 레르마피데리로씨는 이제 완치를 향한 수술을 앞두고 있다.

허관 보절면장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혼이주여성을 위해 성금을 모아 전달했을 때 '아직 우리 사회에 온정이 남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주민들이 보내준 따뜻한 마음에 힘입어 레르마피데리로씨가 반드시 완치라는 기적을 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ja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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