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첫 가톨릭사제 킨리 "포교보다 중요한 건 자비·사랑 실천"

입력 2017-11-12 08:00
수정 2017-11-12 09:31
부탄 첫 가톨릭사제 킨리 "포교보다 중요한 건 자비·사랑 실천"

연말 예수회 인도 다즐링 관구장 퇴임…"고국서 가난한 사람 돕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저의 목표는 부탄 국민을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회 인도 다즐링 관구장인 킨리 체링 신부는 불교 국가인 부탄 출신으로 세례를 받은 최초의 가톨릭 신자이자 사제 서품을 받은 유일한 신부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한 부탄은 10여년 전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긴 했지만, 현재 전체 인구 75만 명 중 가톨릭 신자가 70~80명에 불과하다. 이들 중 대부분은 네팔 출신으로, 킨리 신부 같은 부탄 토박이 중 가톨릭 신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연말 다즐링 관구장 퇴임을 앞두고 내한한 그를 마포구 예수회센터에서 만났다.

부탄 상류 가정에서 태어난 킨리 신부가 천주교를 처음 접한 것은 다섯 살 때였다. 인도 다즐링의 예수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로 유학간 그는 가톨릭에 빠져들었고, 열네 살 때인 1974년 몰래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됐다.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영세 받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그는 신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주변 선교사들이 만류한 탓에 꿈을 접고 인도 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뒤 3년간 인도 회사에서 일했다.

신부의 꿈을 마음 한 구석에 지닌 채 지냈던 그를 다시 사제의 길로 이끈 것은 스물 다섯이던 1985년에 만난 테레사 수녀였다.

"출장 차 비행기를 탔는데 테레사 수녀님이 바로 제 옆자리에 앉으셨어요. 수녀님께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고백했죠. 그 말을 들은 수녀님이 제 손을 잡더니 '많은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너에게는 성소(하느님이 성직 또는 수도 생활을 하도록 부르는 것)가 있다. 너는 사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테레사 수녀님이 제게 사제의 소명을 깨우쳐 주신 것이죠."

그는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신부가 됐지만, 자신의 불교적 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자신을 불교 셔츠 위에 크리스천이라는 외투를 껴입은 '불교-가톨릭 신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왜 신부가 됐냐고요? 가장 짧게 답하자면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료되서죠. 다즐링에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고 저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불교적 배경 덕분에 그리스도를 더 잘 알아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제 서품을 받고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다즐링의 성요셉 고등학교 교장 직을 마친 뒤 예수회 다즐링 관구장이 됐다. 올해 말 임기 6년의 관구장 직을 마치면 고국에 돌아가 사회복지센터를 지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게 그의 꿈이다.

"제 목표는 부탄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에요. 저 역시 스스로 크리스천이 된 것이지 누구도 나를 개종시키지 않았거든요.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누군가가 첫 발을 내딛고 고리를 연결해야 하는데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죽기 전에 부탄에서 한 명이라도 가톨릭 사제가 더 나와서 이 일을 계속해 줬으면 하는 게 작은 소망"이라고 덧붙였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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