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는 변할 것인가…빈살만 왕세자의 정치적 모험
개혁의 과격성만큼이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듯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모하마드 빈살만(MBS) 왕세자가 부패 일소를 이유로 왕자와 재벌급 기업인, 고위관료 등 사우디 최상층부 인사들을 대거 체포함으로써 사우디는 물론 인접국에 파장을 초래하고 있다.
MBS의 전격적인 대규모 숙청은 사우디의 정치, 종교계는 물론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층에도 '심각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미 진보계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가 9일 분석했다.
브루킹스는 그러면서도 MBS가 파격 조치를 통해 장악한 자신의 권력을 과연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4일 MBS의 부친인 살만 왕은 MBS를 수장으로 하는 반부패위원회의 구성을 선포했고 MBS는 불과 수 시간 만에 전격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그가 겨냥한 것은 크게 3개 그룹이었다.
우선 11명의 왕자가 체포됐다. 사우디 국가방위군을 이끄는 무타입 빈압둘라 왕자와 자신의 이복형제인 투르키 전 리야드 지사, 국제적 재벌기업인인 알왈리드빈탈랄 왕자 등이 포함됐고 전 왕세자 아들인 만수르 빈무크린 왕자는 다음날 의문의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했다.
두 번째 그룹은 고위관료들과 비(非)왕가 인물들로 전 경제기획장관과 재무장관 등이 포함된다.
세 번째 그룹은 재계 인사들로 ART 그룹 소유주인 살레 카멜과 사우디 빈라딘 그룹 회장인 바크르 빈라딘, 알-다바그 그룹 최고경영자(CEO)인 아므르 알-다바그 등이 포함된다.
사우디 내 광범위한 지도급 인사들을 체포함으로써 MBS는 각계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MBS는 우선 사우드 왕가 내 고위 왕자들을 겨냥함으로써 사우드 왕가 내 1천500여 왕자들에게 그동안 유지돼온 (주요 정책에 대한) 왕가 주요 가문 간의 합의제와 권력 분점 관행이 종식됐음을 천명했다.
향후 사우디의 권력은 국왕과 왕세자로 단일화될 것임을 선포한 것이다.
MBS는 이번 숙정을 통해 군과 경찰, 국가방위군 등 국내 모든 보안세력을 장악했으며 '왕족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줄에 서거나 숙정 당하거나 택일하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브루킹스는 분석했다.
또 관료와 기업인들의 체포는 공공 및 민간 분야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거나 고위관료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정부로부터 특혜성 계약을 따내온 국내 그룹들의 정경유착 관행을 강력 경고한 것이다.
또 지위를 이용해 치부하면서 왕족에 준하는 호사를 누려온 일부 비왕족 고위관료들도 경고 대상에 포함된다.
MBS는 사우디 내 이들 특권층의 초법적 일탈을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아울러 체포된 특권층의 재산을 몰수함으로써 국고에 수십억 달러를 충당하는 부수효과도 거둘 전망이다.
그러나 MBS 자신과 그 측근들은 이러한 반부패 조치로부터 '예외'가 되고 있다는 허점도 있다.
MBS가 프랑스 남부 해안 휴가 중 5억5천만 달러(약 6천억 원) 상당의 호화요트를 사들이는 등 MBS와 살만 국왕 부자의 사치 행각은 그가 내세우고 있는 투명한 사회 정책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또 사우디 당국은 성직자와 지식인, 행동가 등 반체제인사 30명을 체포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용인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 숙정의 또 다른 신호는 MBS의 주요 지지 기반인 사우디 내 젊은 층에 대한 것이다. 현재 사우디 인구의 약 절반은 25세 이하이며 젊은층 실업률이 오는 2030년에는 42%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업과 부패는 지난 수십 년간 사우디 내의 심각한 문제가 돼 왔으며 MBS의 이번 조치는 이들 문제의 해결과도 관련이 있다.
자연스럽게 MBS의 이번 숙청은 벌써 사우디 내 젊은층과 주민 대다수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자신이 32세의 젊은 왕자인 MBS는 젊은층의 지지를 중시하고 있으며 실업과 부패라는 경제적 난제들을 해결하는데 부심하고 있다.
자신이 주도해 추진 중인 '사우디 비전 2030'은 이들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 전략인 셈이다.
따라서 비전 2030과 진행 중인 국내 경제 체질 변화 작업의 성패가 향후 MBS의 권력 강화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내세운 경제적 공약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정치적 기반도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비전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주민들의 불만과 함께 지도층 내에 도전세력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번 숙청은 그 속도와 범위의 파격성만큼 후유증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기업인들의 체포는 사우디에 대한 투자 분위기를 위축시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외국 투자자들은 사우디 기업들과의 거래에 신중을 기할 것이다.
또 그동안 사우디 체제를 유지해온 사우드 왕가와 종교계와의 동맹관계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사우드 왕가는 그동안 왕가가 신봉해온 이슬람 종파인 와하비파 성직자들로부터 종교적 정통성을 부여받아왔다.
그러나 MBS가 사우디를 사회적으로 자유화하고 온건 이슬람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공언한 만큼 엄격한 이슬람 교리를 고수하고 있는 종교계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는 그동안 파키스탄 등 해외에 와하비즘을 수출해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등 수니파 극단주의 그룹의 모태가 됐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사우디는 본래 온건 이슬람 노선을 추구해왔으나 지난 1979년 극단주의 세력에 메카 사원을 점거하고 사우디 왕가의 온건 노선을 질타한 후 종교계를 의식해 보수 노선으로 돌아섰다.
사우디 정부는 이미 '악명높은' 종교경찰의 권한을 상당 부분 축소했다. 또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고 영화 관람 허용 등 완화조치를 펴나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다수 주민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으나 종교계와 보수층으로부터는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MBS의 개혁은 파격적인 추진력만큼 한편으로 '도를 넘을'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브루킹스는 지적했다.
공격적 행동으로 내부적으로는 사우드 왕가와 종교계, 재계 지도자들을 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인접 예멘 내전 개입과 카타르와의 불화, 그리고 최근에는 친이란 세력인 헤즈볼라와 맞서고 있다.
레바논이 예멘에 이어 또 다른 수니-시아파 간의 유혈 각축장이 될 수 있다.
문제는 MBS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또 (주요 사안에 대한) 사우드 왕가 내 합의 관행이 깨지면서 소수에 의한 '덜 안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실책이 많은' 정책이 나올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또 이번 숙정이 단기적으로 MBS의 권력 강화에 도움이 되겠지만, 왕가는 물론 경제계 내부에도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MBS가 앞에 놓인 숱한 난제들을 어떻게 처리해나가느냐가, 사우디에 새로운 질서를 마련한 시대의 영웅으로 남을지 아니면 또 다른 참담한 실패의 본보기로 남을지 관건이 될 전망이다.
yj378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