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비리 들춘 인도네시아 부패척결위, 경찰수사 직면 논란

입력 2017-11-10 11:23
정계비리 들춘 인도네시아 부패척결위, 경찰수사 직면 논란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정치인들이 대거 연루된 뇌물사건을 들춰낸 인도네시아 부패척결위원회(KPK) 당국자들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을 처지가 됐다.

10일 자카르타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티토 카르나비안 인도네시아 경찰청장은 전날 아구스 라하르조 KPK 위원장과 사웃 시투모랑 부위원장을 직권남용과 서류위조 등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인도네시아 전자신분증(E-ID) 사업 비리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세트야 노반토 인도네시아 하원의장이 KPK 관계자들을 경찰에 신고한 데 따른 조치다.

앞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1∼2012년 5조9천억 루피아(약 4천9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자신분증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이 과정에서 예산의 절반 가까이가 유용됐다.

빼돌려진 예산은 전·현직 하원의원 37명에 대한 뇌물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하원은 오히려 KPK 당국자들을 청문회에 회부하고 수사 및 기소권 박탈을 시도하는 등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에 KPK는 세트야 의장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처하는 강수를 뒀지만, 현지 법원이 입건 취소를 지시하면서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아구스 위원장과 사웃 부위원장에 더해 해당 사건을 직접 조사한 KPK 수사관 20여명도 함께 조사할 계획이다.

이에 현지에선 KPK와 경찰의 뿌리 깊은 알력이 다시 표면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KPK와 정치권의 갈등을 틈 타 경찰이 반부패 전담부서 창설을 추진하는 등 관할권 확장을 시도하는 것도 이런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KPK는 2003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립된 이래 집권당 총재와 헌법재판소장 등 고위층과 유력인사를 상대로 성역 없는 수사를 벌였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과 극심한 다툼을 빚었다.

2009년에는 뇌물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KPK가 경찰 고위간부를 수사선상에 올리자, 경찰이 당시 KPK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체포하는 보복을 감행했다.

2012년에는 경찰 고위간부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KPK 수사관이 경찰에 연행됐고, 2015년에는 경찰청장 후보로 지명된 3성 장군 부디 구나완의 수뢰 혐의를 조사한 당시 KPK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경찰이 서류위조와 선거 관련 위증교사 등 혐의로 체포해 사임시키는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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