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의 친구' 프랑스 작가·편집인 로제 그르니에 별세
출판사 갈리마르 최장수 편집인…카뮈 발탁으로 문단 데뷔, 50여권 저서 남겨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의 작가이자 저명한 문학편집자인 로제 그르니에가 별세했다. 향년 98세.
프랑스 언론들에 따르면 갈리마르 출판사의 최장수 편집위원인 로제 그르니에가 지난 8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겨울 궁전' '파르티타' '이별 잦은 시절' 등의 50여 권 소설과 에세이를 남긴 그는 '시네로망'으로 1972년 페미나상을 받고 1985년 이전까지 출간된 모든 저서에 대해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대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고령에도 최근까지 저서를 꾸준히 내왔으며, 1964년부터 문학 출판사 '갈리마르'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최근까지도 신진 작가들을 발굴했다.
갈리마르에서는 창립자인 가스통 갈리마르 때부터 3대째 함께 일했다.
그르니에는 대중적인 인기가 높지는 않았지만, 문단에서는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는 소설가이자 날카로운 감식안을 갖춘 문학편집자로 꼽힌다.
한국에도 그의 작품이 불문학자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 등의 번역으로 다수 출간됐다.
그르니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파리 소르본대에서 비평가 가스통 바슐라르에게 수학했고,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레지스탕스(대독항전)에 몸담아 1944년 8월 파리 해방에 참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르니에는 작가 알베르 카뮈의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의 처녀작인 에세이 '피고의 역할'(1949)이 카뮈에 의해 갈리마르에서 출판됐고, 그에 앞서 카뮈의 추천으로 레지스탕스 기관지 '콩바'(Combat)에서 기자로 일했다.
85세이던 2004년 내한했던 그는 당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카뮈가 당시 내가 썼던 기사를 유심히 읽었던지 '콩바'에서 같이 일하자고 했다. 카뮈는 당시 '갈리마르 총서'의 편집을 맡고 있었는데, 내 책을 그곳에서 내도록 해줬다. 카뮈는 생전에 내 책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출판해줬는데, 그의 사후 내가 카뮈의 책을 출판하고 있어 역설적인 운명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기억하는 카뮈는 젊고, 혈기 있고, 유쾌하고,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면서 "내가 '콩바'에서 일할 때 그는 '너를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탁한 친구 카뮈의 뒤를 이어 대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르니에는 백 세를 코앞에 둔 최근까지도 매일 출근해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노력을 계속했다.
르몽드에 따르면 작가이자 평론가인 피에르 아술린은 2013년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에서 편집자 그르니에에 대해 이렇게 썼다.
"머지않아 백 살이 되는 그는 여전히 매일 사무실에 나와 작가들의 원고를 읽고 주석을 쓰고 작가들의 물음에 답한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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