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가 말하지 않는 핏줄…아베 총리 조부는 '평화주의자'
교도통신 출신 아오키 오사무의 '아베 삼대' 국내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말할 때 나오는 것 중 하나가 그의 가계도다.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다. 역시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기시의 동생, 즉 아베 총리에게는 외종조부다. 정치 동지이자 부총리인 아소 다로(麻生太郞)도 먼 친척이다.
외가인 기시 가문의 인맥은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렇다면 자연히 드는 궁금증이 있다. 아베 총리의 친가는 어떤 사람들인가.
국내에 출간된 신간 '아베 삼대'(서해문집 펴냄)는 아베의 화려한 외가 대신, 기시와 마찬가지로 정치인이었으나 주목받지 못한 친할아버지 아베 간(安倍寬)에게 눈길을 돌린다. 저자는 일본 교도통신 기자로 일했으며 2006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인 아오키 오사무다.
아베 총리가 조부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친할아버지는 아베 간이라는 분이다. 반(反) 도조(도조 히데키) 정권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 온 의원이기도 했다." 외조부 기시를 존경한다는 아베가 국회심의 과정에서 조부를 공개적으로 설명한 내용은 이 정도에 불과하다.
책은 아베가를 찾아 혼슈 최서단 시모노세키 근처의 옛 헤키촌으로 떠난다.
왕년의 간을 직·간접적으로 아는 지역 노인들은 간을 "신과 같은 존재"였다고까지 평가한다. 간은 고통받는 서민층의 어려움을 충분히 헤아렸고, 이를 해결하지 않는 기성 정치세력을 가감 없이 비판했다.
증언 청취와 사료 분석,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이 책이 가장 부각하는 점은 '평화주의자' 간이다.
"간 선생의 얘기 내용은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일관되게 반전, 그리고 평화주의였다. 지금의 안보법제 같은 이야기는 간 선생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간을 봤었다는 83세 노인의 이야기다.
전시 파쇼 체제가 한층 기승을 부리고 대다수가 침묵을 택했던 1940년대 초에도 간은 물러섬이 없었다. 정권의 감시와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다. 당시 중의원 의원이었던 간은 '예전에 우리 일본인은 전쟁을 했다. (…) 그래서 어떻게든 평화를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게 2012년 세상을 떠난 지인 무쓰코의 회고다.
반골과 반전의 정치가는 국내외 반발을 무릅쓰고 '전쟁가능한 국가'로의 개헌을 추진하는 손자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책 후반부는 아버지 간의 유산 위에 있었지만 정반대 성향의 처가 족벌을 잇게 된 아베 신타로(晋太郞)를 거쳐 손자 신조(아베 총리)로 향한다.
신타로와 25년간 일했던 비서는 어린 신조를 "이렇게 착한 아이가 있겠느냐고 할 정도로 행실이 좋았던" 소년으로 기억했다. 신조는 대학 입학 이후에도 주변에 뚜렷한 인상 하나 남긴 것이 없을 정도로 배경 좋은 가문의 평범한 도련님이었다.
전후 70년간 일본이 쌓아올린 것들을 무서운 속도로 허물고 있는 아베 총리는 그렇다면 어떻게 극우 아이콘으로 탈바꿈한 것일까.
저자는 아베 총리의 옛 직장 상사 인터뷰 발언을 주목한다. "강아지가 늑대 새끼 무리에 들어간 뒤 늑대처럼 되고 말았다." 확실한 정치 신념이나 철학 없이 "텅 비어있던" 사람이 정치 세습 구조 덕분에 정계에 입문한 뒤 완전히 바뀌었다는 지적이다.
간과 신타로, 신조까지 아베 삼대의 가족사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일본 현대사를 읽어내려가는 일이기도 하다.
신타로가 재일동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았고 최세경 전 의원과 각별한 우정을 나눴다는 이야기 등도 한국 독자에게는 흥미롭게 읽힌다.
길윤형 옮김. 336쪽. 1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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