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왕자' 김기민 "잘 돌고 잘 뛰는 건 내 경쟁력 아냐"
10·12일 클래식 발레 '백조의 호수'로 고국 무대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높은 점프나 빠른 회전 등과 같은 단순 테크닉으로 이곳 마린스키 발레단의 주역이 되긴 어렵습니다. 요즘 무용수들은 다들 잘 돌고 잘 뛰기 때문이죠. 무대 위의 표현력이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세계 최정상 발레단인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25)은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6년 동안 마린스키 극장 무대에 올랐지만, 아직도 긴장되고 흥분되며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다시 또 공연하고 싶은 무대가 바로 이곳 마린스키"라고 말했다.
김기민은 234년 역사의 콧대 높기로 유명한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최초로 입단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입단 두 달 만에 주역에 발탁된 그는 2015년 수석무용수 자리까지 꿰차며 '쾌속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로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거머쥐며 다시 국내외 무용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탄력적인 점프와 긴 체공 시간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경쟁력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사실 잘 돌고 잘 뛰는 건 무용수들이 갖춰야 할 기초 요건"이라며 "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세세한 부분까지 어떻게 표현을 해낼지에 관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의 탄탄한 테크닉과 풍부한 표현력은 현지에서도 상당한 팬덤을 구축했다.
"처음 입단했을 때는 철저한 이방인이었어요.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고요. 지금은 친한 동료들과 제 춤을 사랑해주는 팬들이 많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극장 동료, 관계자들이 저를 '외부에서 온 무용수'가 아닌 '우리 단원'으로 생각해주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를 마린스키 발레단 중심에 우뚝 세운 것은 역시 지독한 연습이었다.
그가 졸업한 예원학교의 경비 아저씨는 연습을 끝낼 줄 모르는 그를 기다리다 지쳐 아예 열쇠를 주고 "아침에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고, 입단 초기 마린스키 발레단에서도 그의 퇴근 시간은 늘 "연습실 문이 닫힐 때"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최근 1년간 부상으로 공연을 쉬게 된 뒤 몸에 휴식을 주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 중이다.
"워낙 연습량과 공연 횟수가 많은 발레단입니다. 제가 입단한 이래 20여개 레퍼토리로 200여회의 공연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연습을 과도하게 할 경우 또 부상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몸에 휴식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쉬면서 공연에 관한 음악을 듣고, 제가 출연했던 영상이나 자료를 보기도 해요."
그는 여전히 마린스키 발레단을 "꿈의 무대"라고 표현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무대가 바로 이곳"이라며 "제가 춤을 추는 매 순간이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린스키 무용수로서 세계 유수의 많은 극장과 발레단에 초청돼 공연했습니다만, 마린스키만큼 클래식 전막 발레를 아름답게 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의상, 무대 디자인, 군무부터 주역 무용수까지의 기량, 오케스트라 등 모든 것의 조합이 가장 완벽한 발레단은 역시 마린스키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는 이날부터 1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클래식 발레 '백조의 호수'로 오랜만에 고국 팬들과 만난다.
김기민은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빅토리아 테레시키나와 함께 10·12일 무대에 오른다. 9·11일은 마린스키 극장 분관 개념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프리모스키 스테이지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세르게이 우마넥-이리나 사포즈니코바 커플이 공연한다.
"제 꿈은 매우 쉬우면서도 매우 어려운데, 바로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는 무용수가 되는 것입니다. 무대에서 박수받기는 쉽지만 그 박수 친 관객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현란한 기교만으로는 얻을 수 없죠. 이번 공연에서도 관객분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무대를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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