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In] "수능 코앞 학생들 어쩌라고"…더 꼬인 아침급식 중단사태
"급식 질 최악인데 수당 요구" vs "중노동 급식 노동자 정당한 요구"
청주 A고 학부모-급식종사자 골 깊은 갈등…"애꿎은 학생들만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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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연합뉴스) 박재천 기자 = 9일 한파 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초겨울 날씨를 보이는 요즘 따뜻한 아침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고등학생들이 있다.
게다가 3학년 학생들은 자신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불과 일주일 남겨놓은 상태다. 많은 사람의 애가 타지만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청주 A고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학교 영양사를 비롯한 급식종사자들이 아침급식 제공을 거부한 '부분 파업'이 장기화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시작된 뒤 18일째로 접어들었다.
점심과 저녁은 평소와 다름없이 나오고 있지만, 아침급식이 중단되면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70여명은 부모들이 매일 챙겨오는 빵·우유, 김밥, 덮밥류로 끼니를 때웠다.
지난 8일에는 식당을 운영하는 동문회장의 지원으로 학부모들이 밥과 반찬, 국을 1회용 용기에 담아 기숙사에서 배식했다. 모처럼 만에 먹어본 아침밥다운 아침밥이었다.
학교 안팎에서는 이유야 어떻든 수능을 코앞에 둬 신경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고3 수험생들이 먹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며 급식 중단사태를 비판하고 있지만, 급식종사자들은 요지부동이다.
이 학교 아침급식 중단사태는 급식종사자들과 학부모들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학부모들은 계속해서 급식의 질을 문제 삼아왔고, 급식종사자들은 이에 맞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다 정면 충돌했다.
지난 9월 12일 영양사 '조식 지도' 수당 지급안이 영양사 요청으로 학교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올랐다. 아침급식을 챙기는 수당으로 하루 2만5천원, 월 20만원(주 2회)의 수당을 달라는 것이었다.
학교운영위에 따르면 이 안건은 급식소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데다 급식의 질에 불만이 많은 학부모들의 의견이 반영돼 부결됐다. 10월 10일 열린 급식소위에 이 안건이 다시 상정됐지만 부실 급식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재차 부결됐다.
영양사와 조리원 12명이 속한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충북지부는 지난달 17일 ▲ 급식실 운영 관련 폭언 학부모 사과 ▲ 조식 조리업무 조합원 초과근로시간 유급 인정 ▲ 석식 조리 인원 추가 배치 ▲ 영양사 조식 수당 지급을 이 학교에 요구했다.
이들 4개 요구안은 같은 달 19일 학교운영위에 부쳐져 비밀투표를 통해 찬성 3표, 반대 12표로 재차 부결 처리됐다. 수익자 즉, 학부모 부담금 증가가 명목상 반대 사유였다.
노조는 이에 아침급식 거부 투쟁을 선언하고 같은 달 23일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아침 제공이 중단되면서 학부모와 급식종사자 간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학부모들은 노조가 개입한 것에 더욱 감정이 상했다. 그동안 확보해 둔 부실급식 사진도 공개했다.
이 학교 아침은 급식 단가가 5천800원으로, 청주지역 평균(4천650원)을 훨씬 웃도는데도 급식의 질은 바닥 수준이어서 아이들의 불만이 많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 학교 점심과 저녁 급식비는 3천800원이다.
노조는 "전체 학생들이 먹는 중·석식 비용과 기숙사 학생들만 먹는 조식 비용을 모두 합쳐 평균을 내는 다른 학교와 달리 아침만 따로 떼어 단가를 책정한 이 학교만의 특성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부실급식 논란에 대해서는 "잘못은 시정할 것"이라면서도 "한 달 90끼의 식단이 매번 학생들에게 만족스러울 수 없고, 이런 사정은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보였다.
급식종사자들은 수능을 앞둔 3학년 학생들에게 아침밥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있다.
영양사 B씨는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정말 미안하고 가슴 아픈 부분"이라며 "조속히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조는 최근 학교운영위원 2명, 학교 측 2명, 학부모 2명, 노조원 2명 등 8명이 참여하는 협의회를 열어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자고 학교 측에 요청했다.
노조 관계자는 "(일부 쟁점과 관련) 협의를 통해 내년에는 긍정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확답하면 해결될 일"이라며 "학교가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꼬이게 했거나 최소한 방조했다"고 학교 측을 겨냥했다.
학부모 대표들은 노조 제안에 "다음 학교운영위에서라면 몰라도 이미 부결 처리된 사안을 재론하는 것은 안될 말"이라며 노조 측 제의를 거부했다.
이들은 오히려 직무유기로 학생들의 건강권을 침해했다며 영양사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양측의 갈등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영양사, 조리원 등 교육공무원은 비위로 징계를 받거나 감사에 따른 인사 조처가 진행되지 않는 한 강제 전보시킬 수 없다. 2020년까지는 개인이 원할 경우에만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식단 다양화를 꾀하고 급식 만족도 조사방법 개선을 이 학교 급식종사자들에게 지도한 상태"라며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당사자 간 대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jc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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