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삶과 죽음은 하나"

입력 2017-12-10 09:01
[연합이매진] "삶과 죽음은 하나"

생사학 전문가 오진탁 교수가 말하는 죽음의 의미

"참 행복은 아름다운 마무리에"

(춘천=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어느덧 세밑이다. 달력이 남겨놓은 마지막 잎새 하나 12월. 안드레아 보첼리와 사라 브라이트만의 노래 '타임 투 세이 굿바이(Time To Say Goodbye)'가 더욱 장엄하게 가슴을 울린다.

작별이란 본디 이토록 큰 감동을 낳는 것인가. 삶과 죽음 또한 그러할 터! 해넘이가 있어 해돋이가 있듯 삶과 죽음 역시 하나로 이어져 있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는 연말연시는 그 배턴 터치의 시간!

생사학(生死學) 전문학자인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에게 삶과 죽음, 그리고 진정한 행복에 대해 들어본다.





◇ 국내 대학에 생사학 최초 도입

강원도 춘천시내의 야산 언덕에 자리 잡은 한림대학교.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이곳을 찾은 11월 초에 캠퍼스를 감싼 300여 m의 봉의산은 연갈색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저 멀리로는 높이 900m에 가까운 대룡산의 능선이 질주하는 거룡처럼 웅혼하게 내달렸다.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른다 싶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양적 시간과 질적 시간, 객관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의 차이랄까요? 삶과 죽음 또한 그러해요. 삶의 시간이 줄어들고 죽음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시간은 더욱 빨리 흘러가는 듯 느껴집니다. 연말연시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사색하기에 적합한 때죠."

'생사학' 분야를 국내 대학에 최초로 도입해 지난 20년 동안 연구해온 오진탁(吳進鐸·59) 한림대 철학과 교수는 한 해를 보내는 소회를 담담한 어조로 들려줬다. 국내에서 '죽음'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한 오 교수는 1997년 한림대에 죽음 관련 강좌를 개설하고 2004년 생사학연구소를 개소하는 등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해왔다.

한국사회는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과 과학발전 등 삶의 외적·양적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공감과 연대, 행복 등 내적·질적 가치를 소홀히 한 나머지 국민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을 맴돈다. 자살률은 2003년 이후 14년째 1위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오 교수는 "국민행복도가 낮고 자살률이 높은 것은 공동체 형성, 사랑의 실천, 사회적 약자의 배려, 영혼의 성숙 등 삶의 질적 수준이 낮다는 의미"라며 "죽음의 질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일상에 삶만 있을 뿐 죽음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인 한국사회는 좀처럼 삶의 질 면에선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오 교수가 죽음 문제를 줄기차게 탐색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오 교수가 죽음에 관심을 가진 건 대학 때부터였다. 서양철학을 전공한 오 교수는 "죽음이란 원래 철학의 중요 과제였지만 대학에서는 죽음을 가르치지 않아 의아했다"며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동서양의 자료를 모았고 대학원부터는 노장철학과 불교철학에 집중하며 죽음 문제를 파고들었다"고 회고했다.



◇ "웰빙은 웰다잉 통해 완성"

지난 10월 하순, 정부는 죽음과 관련해 의미 있는 발표를 하나 했다. 임종과정의 환자가 연명의료의 시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케 하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앞두고 10월 23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시범사업을 한다는 것이 골자다.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 등 4가지의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은 내년 2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오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이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위한 의학적·법적 장치를 마련한 것일 뿐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와 죽음의 질적 향상을 위한 내용을 법에 담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총체적 접근, 생명교육(죽음준비 교육) 실시 등 죽음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적 노력과 제도적 장치가 미비돼 있다는 지적으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웰다잉이나 존엄사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삶이란 과연 죽음과 별개일까? 오 교수는 "사람들은 흔히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기쁨과 고통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려 한다"면서 "그러나 행복과 불행, 기쁨과 고통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듯 삶과 죽음 또한 함께 붙어 있는 존재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삶과 함께 있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삶을 부정하는 겁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을 수밖에 없어서이죠. 아무리 잘 살았다 한들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잘' 살았다고 할 수가 없어요. 웰빙이란 삶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잘 죽는 것' 즉 웰다잉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연장이요 완성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다운 삶의 권리만 생각했을 뿐 존엄한 죽음의 권리는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어요. 죽음이란 부정적인 것, 회피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그 무엇이라고만 인식해온 거지요."

그러면서 오 교수는 삶과 죽음이 결코 나뉘어 있지 않음을 나비의 사례로 설명했다. 이는 죽음을 '옷을 벗는 과정'이라고 한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의 말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몸은 고치 속에 있는 번데기와 같습니다. 죽음에 의해 우리 영혼은 번데기에서 벗어나 저 나비처럼 예쁘게 날아서 하늘로 올라가는 겁니다.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뜻이죠. 이는 죽음에서 희망을 읽느냐 절망을 읽느냐의 차이입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은 그가 삶을 어떻게 살았나 하는 존재의 가치를 거짓 없이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도 다음과 같이 영혼불멸을 외쳤단다.

'죽음이란 해가 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의 눈으로부터 벗어나 볼 수 없게 되더라도 태양은 지평선을 향해 조금도 변함없이 빛나고 있다. 우리의 생명 또한 마찬가지로 죽은 뒤에도 변함없이 계속 존재한다. 내세에 대한 희망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죽어 있는 셈이다.'

이 역시 '기(氣)가 변해서 형체가 생겨나고 형체가 변화해서 삶이 있게 되는 등 삶과 죽음은 자연의 변화과정에 불과하다'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의 생사관과 일맥상통한다.

◇ 터부시되는 현실에 드문 임종실

산업화 이전인 30~40년 전만 해도 삶과 죽음은 일상에 공존했다. 연로한 조부모나 부모는 자신이 살던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가족과 마을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건히 장례가 치러졌다. 하나의 장엄한 축제였다고나 할까? 망자는 죽음에 순응했고, 산자는 죽은 자와 자연스럽게 결별했다.

"예전에는 집에서 임종하고 집에서 장례를 치렀는데 지금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고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게 대부분이지요. 가족이 임종마저 직접 보지 못하는 일도 많습니다. 이는 바람직한 임종장소인 자기 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병상에 방치돼 힘겹고 쓸쓸하게 운명의 시간을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들은 최후의 순간에 철저하게 외면당하지요. 힘든 투병생활을 하다 갑자기 위급상황이 닥치면 심장마사지니 뭐니 하여 응급조치를 취하기 위해 가족들은 병실 밖으로 쫓겨나게 되는 거고요."

웰빙만 있을 뿐 웰다잉이 없고 장례는 있을지언정 임종문화가 실종된 절름발이식 현실의 이면에는 예비 의사와 예비 간호사들에 대한 생명 교육(죽음준비 교육)이 부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오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의과대학에서 예비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죽음을 가르치지 않아요. 병의 치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의과대학 교육 시스템도 바뀌어야 합니다. 병을 고치는 일과 함께, 임종자를 편안하게 떠나보내는 일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병원들은 병실(삶)과 장례식장(죽음) 사이에 단절만 있을 뿐 삶에서 죽음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생략돼 있어요. 대부분의 대형병원에 병실과 장례식장만 있고 호스피스 병상, 임종실을 운영하는 곳이 드물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사문화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줍니다."

죽음 문화의 왜곡과 부재는 외화내빈, 주객전도의 장례 풍경을 낳고 있기도 하다. 오죽하면 국내 대학의 한 아일랜드 출신 교수가 '번호표를 뽑는 화장장과 현찰을 세는 장례식장의 풍경이 꼭 패스트푸드 식당 같았다. 한국을 좋아하지만 한국식으로 죽거나 묻히고 싶지 않다'고 자신이 받은 충격을 토로했겠느냐는 거다.

삶과 죽음의 단절은 세계 최고를 기록하는 자살률과도 무관치 않다.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는 생각, 즉 죽음에 대한 오해 때문에 쉽게 삶을 포기한다는 것. 오 교수는 "죽음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살기 힘들다 해서 자살한다고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않음을 알려야 한다"면서 "자살 예방의 해법 역시 생명 교육(죽음준비 교육)에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삶 자체와 함께 진행되는 거죠. 이처럼 삶과 죽음은 분리되지 않아요. 성장의 마지막 계기인 죽음을 수용하지 않거나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뿐 아니라 삶에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우리가 종교적 수행을 하는 이유 또한 죽음 준비, 즉 삶의 준비에 있지요.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담담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죽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이룰 수 있는 최대의 성취입니다."



◇ "죽음, 일상 대화 주제로 올릴 수 있어야"

오 교수는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면 죽음을 일상 대화 주제로 자연스럽게 올릴 수 있어야 한다"며 죽음 관련서를 읽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면 편안히 작별하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매년 약 26만 명이 임종합니다. 그중 아름다운 마무리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선 죽으면 다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성찰이 무엇보다 필요해요. 사전의료의향서, 사전장례의향서 등을 미리 준비하고 유서도 작성해둘 필요가 있고요. 또 가족 간에 평소 죽음에 대해, 임종방식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갑자기 헤어질 시간을 맞더라도 죽음과 작별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임박했을 경우 당사자가 자기 죽음을 수용하고, 가족도 사랑하는 이의 임종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죠. 그랬을 때 '이젠 떠나겠다' '편안히 떠나시라'며 서로 작별하는 게 가능할 겁니다."

오 교수는 "참된 행복은 바로 '웰다잉'에 있다"면서 "우리가 추구할 것은 삶만의 행복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행복이어야 한다. 웰다잉이 빠진 웰빙과 행복은 결코 반쪽도 되지 못하는 허깨비에 불과하다"고 재삼 강조했다.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죽음의 질과 함께 삶의 질도 향상될 수 있다는 것.

그는 그러면서 죽음은 빈부귀천을 떠나 만인에게 평등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람의 평등,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시간의 평등,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는 장소의 평등, '누구 언제 어디서 죽을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예측 불가능성의 평등이 그것.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격언의 엄연함을 잊지 말자는 얘기다.

"품위 있는 생의 마감, 아름다운 마무리를 잘 표현한 대표적 시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입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대목이 압권이지요."

'마지막 선물' 등 저서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등 번역서를 다수 출간한 오 교수는 후속서 '행복한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내년에 펴낼 예정이다. 이 책에는 '행복한 삶과 행복한 죽음'을 함께 생각하자는 제안이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담길 것이라고 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