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재도전…"시민 힘으로"

입력 2017-11-08 09:30
[가을엔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재도전…"시민 힘으로"

5년 준비했지만 '불발'…등재 목표 2021년으로 재설정

"한양도성 가치 알리자" 시민모임 활기…무료로 도성 안내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내 나라 사람들이 제대로 향유하지 않고 잘 알지 못하고, 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배웠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2'에서)

세계에서 인구 천만이 사는 대도시 중 서울처럼 거대한 성곽이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늘 가까이 있어서인지 600년 역사를 지닌 한양도성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이는 한양도성이 올해를 목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한양도성의 존재 가치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도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때문에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분석이다.

서울시는 한 차례 실패를 교훈 삼아 '2021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다시 한 번 항해를 시작했다. 한양도성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시민 모임도 활기를 띄고 있다.



◇ 13번째 세계문화유산 꿈꿨지만…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2년이다. 그해 11월 한양도성은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올랐다.

한양도성이 1396년 내사산(백악산·남산·낙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된 이래 꾸준히 유지·보수되며 자리를 지켰고, 자연과 어우러진 서울의 경관이 돼 왔다는 점에서 13번째 세계문화유산이 될 것이란 기대가 컸다.

우리나라에선 1995년 석굴암·불국사를 시작으로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까지 11건의 문화유산과 1건의 자연유산(제주도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5년 넘게 준비해온 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비보가 지난 3월 전해졌다.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리려면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평가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코모스는 사전심사에서 한양도성에 '등재 불가' 판정을 내렸다.

한양도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다른 도시 성벽과 비교했을 때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성이 600년간 유지됐지만, 행정적으로 관리돼 오늘날까지 이어진 전통으로 볼 수 없다는 평가도 나왔다.



문화재 전문가 사이에선 이코모스의 심사 결과가 뜻밖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각국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심사가 엄격해진 데다 중국의 견제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랐다.

'등재 불가' 판정 이후 서울시는 바로 전략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우선, 국내 전문가 9명에게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자문을 받았다. 이후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미 등재된 다른 나라 성곽 29건과 한양도성을 비교 연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8월부터는 이코모스 심사에 참여한 적 있는 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청취하고 있다.

서울시는 국내외 전문가의 자문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등재 전략을 정비해 2020년 신청서를 다시 내겠다고 밝혔다. 목표는 2021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다.



◇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한양도성 안내

비록 첫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한양도성에는 '시민 지킴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생겼다.

한양도성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전파하고, 도성 훼손을 막는 시민 모임이 활성화된 것은 등재 추진 과정에서 얻은 큰 성과다.

'서울KYC 도성길라잡이'는 한양도성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는 대표적 시민 모임이다. 자원봉사 해설가들이 매주 일요일 오후 1시 30분 창의문·혜화문·광희문·숭례문에서 출발해 참가자와 함께 걸으며 무료로 한양도성 4개 탐방 코스를 안내해 준다.

이들은 지난달 14∼15일에는 한양도성 18.6km를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를 개최했다. 매년 8월에는 야경이 아름다운 구간을 안내하는 '달빛기행'을 진행한다.

올해 달빛기행 목멱(남산)구간을 안내한 도성길라잡이 양승수씨는 "우리 궁궐과 종묘의 아름다움을 알리던 해설 자원봉사자들이 2008년 남대문 화재를 계기로 시작한 게 도성길라잡이"라며 "시민들이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느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해보자는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양 씨는 1기 도성길라잡이의 문화재 해설을 듣고 감명받아 2기로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100명이 넘는 1∼9기 길라잡이가 한양도성을 알리고 있다.



2013년부터는 한양도성 보존·관리에 참여하는 '시민 순성관'도 활동하고 있다. 조선시대 도성을 순찰하는 역할을 한 '순성관'에서 이름을 따왔다.

처음에는 아무나 순성관이 될 수 없었다. 조선 팔도에서 32만명이 한양도성 축성에 참가했다는 기록에 착안해 각 시·도민회에서 순성관을 추천받고, 기록으로 남은 도성 축성 참여자의 본관 대종회에서도 추천받았다.

지금은 만 19세 이상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시민 순성관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도성 보존 캠페인과 정화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구청에 소속돼 한양도성을 체계적으로 알리는 전문 해설사도 늘어났다.

한양도성이 지나는 중구 장충동 토박이인 김종대 해설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유산을 해설할 때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한양도성 보호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탐방객이 성곽에 낙서하거나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성곽 위에 올라가는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낙산공원에는 '성곽 위에 올라가지 마십시오', '한양도성을 아껴주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문화재를 훼손하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3년 이하 유기징역이나 1억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안내문도 있다.

그런데도 야경 명소로 이름난 낙산 구간에선 시민들이 성곽 위에 걸터앉아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서울시 한양도성도감 관계자는 "한양도성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정도로 소중한 문화유산인 만큼 모든 시민이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며 "단순한 관광·산책 장소가 아닌 미래 세대 공공의 자산으로 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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