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처 X파일 또 폭로…英여왕·美장관·한국인 200여명(종합)
ICIJ, 버뮤다 로펌자료 1천340만건 공개…각국 정상·정치인 120여명 연루
일명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뉴스타파 "한국인 232명 확인"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지난해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역외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를 폭로했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올해 다시 대규모 조세회피처 자료를 공개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동행한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대선 당시 트럼프에 고액을 후원한 기업가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수석 정치자금모금책 등 각국 정상과 정치인 120여명, 가수나 배우 등 유명인과 다국적 기업 등이 대거 포함되거나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ICIJ는 5일(현지시간)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Appleby)의 1950∼2016년 기록을 담은 내부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번에 유출된 자료는 파일 용량이 1.4테라바이트(TB), 문서 1천340만건 규모에 이르고 지난해 파나마 페이퍼스를 입수했던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이 이번에도 자료를 입수해 ICIJ와 공동으로 분석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Paradise Papers)로 명명된 ICIJ의 이번 프로젝트에는 미국 뉴욕타임스(NYT), 영국 가디언, BBC방송 등 세계 67개국 언론사 96개사 소속 언론인 382명이 참여했으며 한국에서는 인터넷언론 뉴스타파가 참여했다.
이번에 조세회피 자료가 대거 유출된 애플비는 버뮤다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898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법률회사다.
버뮤다에 있는 본사 이외에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케이맨제도, 세이셸 등 세계 주요 조세회피처 11곳에 지사를 두고 각국 부호와 다국적 거대기업 등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 등을 통한 조세회피·재산은닉 등을 지원해왔다.
지난해 파나마 페이퍼스에 이어 이번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도 각국 정치인과 유명인, 다국적 기업 등이 대거 등장했다.
유출된 자료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사유 재산 1천만 파운드(약 145억원)를 역외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랭커스터 공국(Duchy of Lancaster)은 이를 조세회피처인 케이맨제도와 버뮤다의 기금에 투자하고 일부는 빈곤층을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영국 전자제품·생활용품 체인 브라이트하우스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BBC방송은 여왕의 재산이 불법 투자된 정황은 없지만 여왕이 역외투자에 참여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케이맨 제도에 설립한 'WL 로스 그룹'을 통해 조세회피처인 마셜제도에 본사를 둔 해운회사 '내비게이터'를 인수했다.
로스는 이 회사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 운영하는 기업에 투자해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이 회사는 지난 2012년 푸틴의 사위인 키릴 샤말로프와 미 정부가 제재 대상으로 분류한 러시아 기업인들이 공동 소유한 에너지기업 '시부르'와 가스선 운항 계약을 맺으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엘리엇 매니지먼트 설립자 폴 싱어,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 헤지펀드 투자자 로버트 머서 등도 애플비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 사업가 유리 밀너가 트럼프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의 부동산 업체에 투자한 사실도 확인됐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측근이자 그의 정치자금 모금책인 스티븐 브론프맨은 케이맨제도에서 조세회피용 펀드를 운용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국적 기업인 나이키나 애플도 조세회피처를 통해 적극적으로 탈세에 가담했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러시아 국영 금융기관들로부터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록그룹 U2의 리더 보노는 몰타를 경유해 리투아니아의 한 대형 쇼핑몰을 비밀리에 보유하는 등 유명인들이 탈세를 위해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사실도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6개월여간 유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문서 내부에 기재된 거주지 주소, 여권번호, 국적 등을 통해 한국인 232명이 포함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 중 조세회피처 설립 서류에 한국 주소를 기재한 한국인은 197명이었고 한국인이 조세회피처에 세운 법인은 90곳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코스닥 상장기업 등 중견업체부터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과 대기업 등도 포함됐다.
이들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지 별로 보면 지중해 몰타에 42곳으로 가장 많았고 버뮤다에 18곳, 케이맨제도와 세이셸에 각각 7곳씩 설립됐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현대상사는 2006년 버뮤다에 '현대 예멘 LNG'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이 회사에 자사가 보유한 예멘 LNG 지분 5.88%를 모두 넘겼다. 이후 현대상사는 이 페이퍼컴퍼니의 지분 48%를 한국가스공사에 넘기는 거래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효성그룹이 지난 2006년 케이맨제도에 설립했다가 2015년 돌연 청산한 페이퍼컴퍼니 '효성 파워 홀딩스' 관련 거래 내역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뉴스타파는 북한 기업인이 몰타에 지난 2011년 11월 '코말 임포트 앤 익스포트 컴퍼니'라는 이름의 회사를 현지인과 함께 설립한 사실이 몰타의 법인등기 서류에서 확인됐다고 전했다.
뉴스타파는 이 회사의 공동대표이자 주주로 지분 절반을 소유한 '송성희'는 평양시 모란봉구역 월향동을 주소로 두고 있으며, 평양안경상점 지배인이자 고려심청회사 사장으로 확인됐다면서 이 회사가 북한이 벌이는 건설노동자 해외 송출사업과 연관해 국제금융 제재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했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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