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방 부동산] ③ "지방, 위축지역 지정 등 지원 절실"
입주 늘어나는 내년 더 심각…"서울 겨냥 8·2대책, 유탄은 지방이 맞아"
"서울서 기침하면 지방은 독감…지역 맞춤형 지원책 필요" 지적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김연정 기자 = 지방 주택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과도한 유동성 장세에서 서울 주택시장이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사이, 지방 곳곳에는 미분양이 넘쳐나고 분양권에는 분양가 이하의 '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전셋값도 급락하면서 2년 전과 비교해 집주인이 전세금을 되돌려줘야 하는 등 역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2∼3년간 몰아친 주택 '공급과잉'과 지역 산업기반이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후폭풍이다.
◇ 서울 '나홀로' 강세에 가려진 지방 주택시장의 눈물
새 정부 들어 역대급 강도의 규제 대책으로 꼽히는 '8·2부동산 대책과 가게부채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값은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대책 발표로 인해 8월 한 달간 상승세가 주춤했지만 9월 이후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오히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나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일부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8·2대책의 충격파로 떨어졌던 매매가가 개별 재료에 힘입어 8·2대책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재료가 있는 서울 재건축 단지나 실수요층이 탄탄한 일반 아파트는 서울이라는 지역적 '희소가치'에 힘입어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8·2부동산 대책 이후 지난달 말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0.86%, 경기도는 이보다 약간 낮은 0.76% 상승했다.
반면 지방 아파트값은 이 기간에 0.07% 하락했다. 정부의 규제는 서울을 집중적으로 겨냥했지만 경남(-1.45%)·경북(-1.14%)·충북(-0.69%), 울산(-0.66%)·충남(-0.58%) 등 충청·경남권은 하락세가 지속됐다.
지방 주택가격 하락은 지난 2∼3년간 주택경기 활기를 틈타 주택공급을 대거 늘린 탓이다.
부동산114 조사 결과 지난해 27만2천가구였던 전국의 아파트 입주물량이 올해 27만9천가구, 내년에는 44만3천가구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경남은 올해 입주물량이 3만9천가구에 육박하고 내년에는 4만가구를 넘는다. 경기도를 제외하고는 전국 최대 물량이다.
충남과 충북은 올해 입주물량이 2만5천가구, 1만2천가구에서 내년에는 각각 2만3천여가구로 늘어나고 경북도 올해와 내년 입주물량이 각각 2만4천∼2만5천여가구에 달한다. 한마디로 '물량 폭탄' 수준이다.
경남의 경우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지역경제가 흔들리는 악재까지 겹쳐 주택시장도 심각한 분위기로 치닫고 있다.
경남 거제의 중개업소 대표는 "집값 하락과 역전세난이 2년째 나타나고 있다"며 "얼마 전 분양권을 3개 가진 조선소 근무자가 가격 하락 등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전셋값도 급락하면서 역전세난이 현실화되고 있다. 2년 전(2015년 10월) 대비 경남과 경북의 전셋값은 나란히 1.94%, 1.65% 떨어졌고 충남과 충북도 각각 0.61%, 0.45% 하락했다. 전셋값이 떨어지면서 집주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해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도 잦다.
지방에서는 정부의 8·2대책의 규제가 서울을 겨냥했는데, 정작 지방에서 유탄을 맞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의 강력한 대출 규제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등의 조치때문에 지방으로 원정투자를 오는 사람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세금이 적은 지방 주택부터 처분해 주택 수를 줄이려 한다는 것이다.
청주시의 중개업소 대표는 "서울에서 기침을 하면 지방은 독감에 걸린다"며 "서울에서 돈줄을 옥죄면 지방 풍선효과는커녕 전반적인 투자심리만 위축될 뿐이지, 수요층 기반이 취약한 지방으로 내려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정부, 지방 위축지역 지정 등 맞춤형 지원책 검토해야"
전문가들은 지방 부동산 시장이 위기는 내년이 더 심각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내년에 주택 입주물량이 올해보다 더 늘어나는데다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도입 등 금융규제는 더욱 강력해질 예정이다.
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울산 동구지역은 2년 전 대비 전셋값이 10%나 떨어졌을 정도로 특히 경상·충청권의 주택시장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8·2대책의 규제가 본격 시행되는 내년에는 지방은 물론 수도권도 시장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도 "앞으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시행하고 DTI 등 대출 규제 강화, 양도세 중과 등 강력한 조치들이 내년에 본격 시행되면 지방 시장은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이고, 오래 갈 것"이라며 "서울이 꺾이면 지방 시장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전국적으로 아파트 입주물량 분기당 10만가구씩 쏟아지는데 이런 기조가 내년을 지나 2019년 1분기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지방 시장의 고통이 2019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지방 주택시장이 더 붕괴되기 전에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심 교수는 "지방은 지금 1년 반 이상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며 "정부가 오로지 서울 집값 잡겠다고 강경 일변도의 규제를 펼치고 있는데 규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말했다.
위축지역 지정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서울 등 일부 시장이 과열되자 '맞춤형 규제'를 하기로 하면서 주택경기가 악화된 곳은 '위축우려지역'으로 지정하고 거래 활성화 등 시장 활력 회복을 위한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이 넘도록 지정한 곳은 한 곳도 없다.
허윤경 연구위원은 "지금 지방 시장은 공급 문제 외에도 지역 경제기반이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외적인 문제도 크다"며 "주택시장 뿐만 아니라 주거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소득·금융지원을 묶어 패키지 차원의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주택정책실장도 "지방 주택 보유자들이 하우스푸어로 연결되지 않게 하려면 거래가 살아나도록 돕거나 새 아파트 입주를 지원하는 등 별도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며 "지자체 중심으로 지역 시장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금융지원이나 규제 유예 등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에 대한 시장 모니터링을 확대해 맞춤형 지원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토연구원 변세일 부동산시장연구센터장은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수요관리정책과 주택시장 연착륙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최근 지역경제여건이 악화된 거제·군산 등에 대해서는 산업·고용지원 정책과 함께 주택정책에 있어서도 우선 배려가 필요하다"며 "지역주택시장과 연령대별, 소득계층별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연구위원은 "서울 집값 상승에 대한 착시효과로 전체 부동산 시장이 오르는 것처럼 착각해선 안된다"며 "차별화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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