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공포" 레바논 총리, 사우디서 전격 사임…이란 비난(종합2보)
하리리 "내 목숨 노리는 모의 감지…부친 암살 전과 비슷한 분위기"
레바논, 내각 구성 11개월 만에 총리 공백…종파갈등 심화 우려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사드 알하리리(47) 레바논 총리가 이란의 내정 간섭을 비난하며 전격 사임했다. 암살 공포도 토로했다.
하리리 총리는 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중에 아랍권 TV로 방송된 연설에서 총리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그는 자신을 노리는 암살 위협을 느낀다고 털어놓으면서, 이란과 그 동맹 세력인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하리리 총리는 "불행히도 이란이 우리 내정에 개입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서 "나는 레바논 국민을 실망시키기를 원치 않고 또 내 원칙에서 후퇴하고 싶지 않기에 총리직에서 물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중동에 퍼뜨린 악은 역풍을 맞을 것"이라면서 "이 지역에서 이란의 손이 잘릴 것"이라고 저주했다.
하리리 총리는 레바논과 시리아 국민을 상대로 헤즈볼라의 무력을 동원하는 데 반대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헤즈볼라는 시리아 사태에 개입해 시리아군을 지원하고 있다.
하리리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암살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배후에 헤즈볼라가 있다고 의심했다.
그는 "라피크 알하리리 암살 직전과 비슷한 분위기가 팽배하다"면서 "내 목숨을 노리는 음모가 진행되는 것을 감지했다"고 말했다.
하리리 총리는 전날 수도 베이루트에서 이란 최고지도자의 국제문제 자문인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를 면담했다.
라피크 알하리리는 현 하리리 총리의 아버지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총 10년간 총리로 재임했다. 하리리 전 총리는 2005년 2월 헤즈볼라 추종자로 의심되는 이들의 폭탄공격으로 사망했다.
사우디에서 태어나 건설회사를 경영한 하리리는 부친의 암살 후 집안의 강권에 레바논 정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수니파 반(反)시리아 정치블록을 이끌며 2005년과 2009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시아파 맹주 이란을 등에 업은 헤즈볼라와는 연정을 구성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쟁하거나 대립했다.
하리리는 지난해 헤즈볼라와 손잡은 미셸 아운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 결과로 내각을 꾸리고 총리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시리아 사태 전개로 더욱 영향력이 커진 헤즈볼라와 시아파 세력은 하리리 총리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
하리리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과 이란·헤즈볼라 비난으로 레바논은 종파갈등의 격랑에 빠져들 우려가 커졌다.
친(親)사우디 정당과 친이란 정당의 대결구도가 심화될 전망이다.
이란은 하리리 총리의 사임 배후에 미국과 사우디가 있다며 음모론을 펼쳤다.
이란 외교부는 "하리리 총리의 사임은 레바논과 중동에 긴장을 만드려는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측근 후세인 셰이크 알이슬람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계획에 따라 하리리 총리가 사퇴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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