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전원주택 살인사건의 재구성…풀어야 할 의문은?

입력 2017-11-03 15:04
수정 2017-11-03 16:10
양평 전원주택 살인사건의 재구성…풀어야 할 의문은?

"치밀한 강도 계획→우발적 살인 이어지자 현장서 우왕좌왕"

'범행동기·범행도구' 등 남은 숙제는 검찰 몫으로

(양평=연합뉴스) 최해민 강영훈 기자 =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의 부친이자 김택진 대표의 장인을 살해한 40대가 사건발생 열흘 만인 3일 검찰에 송치됐다.

피의자는 검거 직후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라고 자백한 것 외엔 아무런 진술도 하지 않고 있어 범행동기부터 범행도구의 실체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경찰은 현재까지 수사한 결과로도 강도살인 혐의를 입증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사건발생…"신고 10시간 만에 검거"

지난달 26일 오전 7시 30분께 경기도 양평군 윤모(68)씨의 주택 주차장 옆 정원에서 윤씨가 숨져 있는 것을 윤씨의 부인이 발견했다.

경찰은 윤씨의 목에서 흉기 상흔을 발견, 타살로 추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윤씨의 벤츠 차량은 이날 오전 11시께 집에서 5㎞가량 떨어진 공터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CCTV 영상 분석을 통해 피의자 허모(41)씨의 차량이 이 공터와 윤씨의 자택 주변을 수차례 오간 사실을 확인, 허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및 차량 수배를 통해 허씨가 26일 오후 3시 11분께 전북 순창 IC를 통과한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오후 5시 45분께 전북 임실의 한 국도상에서 허씨를 검거했다.

경기남부경찰청과 전북경찰청간 면밀한 공조수사로 윤씨가 숨진 채 발견된 지 10시간여 만에 용의자 검거에 성공한 것이다.

현장 조사를 토대로 경찰이 범행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본 결과, 허씨는 오후 3시부터 2차례 윤씨 집 근처를 둘러본 뒤 오후 5시 10분께 현장 주변에 차를 대고 오후 7시 25분까지 윤씨를 기다렸다.

윤씨가 귀가하자 주차장에서 윤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고, 바로 옆 풀숲에 시신을 유기했다.

이후 오후 7시 44분 허씨는 자신의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가 인근 편의점에 가서 오후 8시 34분 밀가루를 구입했고, 현장으로 돌아와 10여분 뒤 윤씨의 벤츠를 몰고 마을을 빠져나갔다.



◇ 치밀한 계획 강도→허술한 우발 살인

피의자 허씨는 범행 전 치밀하게 준비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지난달 21일부터 25일 범행 직전까지 인터넷에서 '고급빌라', '가스총', '수갑', '핸드폰 위치추적' 등의 단어를 검색했다.

또 범행 직후에는 '살인', '사건사고' 등의 단어를 검색해 향후 자신이 받을 처벌의 수위나 경찰 수사상황에 관한 언론보도를 찾아봤다.

범행 당일인 25일에는 휴대전화 통화내역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는 '핸드폰 위치추적' 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전원을 끄고 발신하지 않으면 위치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이를 활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허씨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복원해보니 허씨는 범행 일주일 전인 18일 용인지역 고급 주택가를 돌아봤고,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갔다 나오는가 하면 용인에서 특정 외제차 뒤를 따라다니는 듯한 영상이 확인되기도 했다.

경찰은 허씨가 5천여만원에 달하는 채무로 지난 8∼9월부터 대출업체에서 200여통의 문자메시지를 받는 등 빚 독촉에 시달렸고, 돈 문제를 해결하려고 부유층을 상대로 강도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범행 전 살상이 가능한 무기가 아닌 상대를 제압할 때 쓰는 '가스총'이나 '수갑'을 검색했다는 점과 살인 범행 후 시신을 피해자 집 앞에 방치하고 도주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애초 살인까지는 계획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살인 범행 후 허술한 현장 수습은 우발 범죄에서 나오는 패턴을 보였다.

이에 따라 경찰은 허씨가 강도 범행을 위해 양평을 찾았다가 벤츠를 몰고 귀가하는 윤씨와 마주치자 금품을 빼앗으려 몸싸움을 벌였고, 결국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윤씨가 사건 당일 소지하고 있던 휴대전화와 지갑은 사라진 상태다.

허씨의 차량 조수석에선 윤씨가 귀가하면서 편의점에서 산 막걸리 영수증이 발견됐는데, 이 영수증에서도 혈흔이 검출됐다.

이를 감안할 때 허씨는 살인 범행 후 윤씨의 옷 주머니나 지갑까지 뒤져 이 영수증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 남은 의문은 검찰 몫으로

경찰은 신고 접수 10시간여 만에 피의자를 검거했지만 피의자가 입을 굳게 닫은 탓에 아직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있다.

먼저 범행동기 부분이다.

허씨는 검거 직후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라고 진술했으나 경찰은 신빙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

허씨의 범행 전후 행적과 금융거래 관계 등을 면밀히 조사한 경찰은 그가 금품을 노린 강도범행을 계획한 정황을 찾아냈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을 통해 나와야 할 실제 '동기'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두 번째는 범행도구로 쓰인 흉기가 어떤 것인지다.

경찰은 허씨가 범행 후 전북 순창군 팔덕면을 통과한 사실과 인근에 부친의 묘소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지난달 31일 수사팀을 전북으로 급파했다.

전북지방경찰청의 지원을 받아 야산을 수색하던 경찰은 허씨 부친 묘 근처에서 흉기(날 길이 8㎝)와 포장을 뜯지 않은 채 비닐봉지에 담긴 밀가루를 발견했다.

밀가루는 바코드 대조 결과 허씨가 범행 직후 양평의 한 편의점에서 산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으나 흉기에선 피해자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국과수는 정밀 감정 중이다.

흉기를 분해해 틈 사이를 더 면밀히 살펴보고, 만일 허씨가 이 흉기로 범행한 뒤 특정 성분의 물질로 닦아 증거를 인멸했을 수 있어서 잔여물 검사도 하고 있다.

정밀 감정 결과는 수일 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 흉기가 범행에 쓰인 것이 아니라면 범행도구가 무엇이었는지 또한 앞으로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허씨가 피해자 윤씨를 사전에 알았는가다.

한때 허씨가 엔씨소프트의 대표 게임 리니지 유저라는 사실이 알려져 게임과 관련된 불만을 윤씨에게 푼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으나 경찰은 가능성이 미약하다고 판단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는 허씨가 윤씨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아직 의문점은 남아있으나 경찰은 허씨가 범행을 시인한 점, 범행 시간대 현장 주변을 오간 점, 입고 있던 바지와 신발에서 피해자 유전자가 검출된 점 등을 근거로 강도살인죄 입증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빨리 송치해 달라'라는 말만 반복하며 진술을 거부해왔다"라며 "이로 인해 범행동기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검찰 송치 후에도 검찰과 긴밀히 협조해 사건의 실체를 밝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goal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