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지만 갈 길 멀다"…'주마가편'식 김상조 재벌개혁
"출발은 긍정적" 평가하면서 "개혁 의지에 의구심" 직언도
"변화 결과 아닌 '변화 의지'를 보여달라" 주문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일, 5대 그룹 간담회에 앞서 A4용지 9장 분량의 모두 발언을 꼼꼼히 준비했다.
통상 김 위원장이 행사에서 준비하는 모두 발언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길었다. 원론적인 딱딱한 발언이 대다수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내용도 상세해 눈길을 끌었다.
이례적으로 긴 그의 모두 발언에는 재벌개혁에 대한 신중한 태도와 평소 정부 정책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국민적 입장에서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에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다"며 기업들의 셀프 개혁을 강하게 촉구했다.
하지만 곳곳에 '몰아치기식' 변화는 확실히 경계하겠다는 의지도 눈에 띄었다.
김 위원장은 정책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이 '예측 가능성'이라며 대기업 정책을 담당하는 공익법인 전수조사, 지주회사 수익구조 점검 등 기업집단국의 향후 계획을 일부 상세히 소개했다.
특히 공익법인 전수조사와 관련해서는 "다음 달쯤 시작해 내년 상반기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일정까지 상세하게 밝혔다.
통상 공정위가 조사·점검과 관련된 업무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점에 비춰보면 김 위원장의 발언은 흔치 않은 일이다.
기업집단국의 역할 중 하나가 직권 조사와 제재는 맞지만, 그 결과로서 "기업정책에 대한 법 제도적 개선 방안을 제안하고 집행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대기업 저승사자'라는 별칭을 달고 새로 출범한 기업집단국에 대한 재계의 막연함 불안함을 씻어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언론 등을 통해 자발적 개혁 시한으로 알려져 부담이 되는 '12월 말 1차 데드라인(시한)'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내놨다.
김 위원장은 '데드라인'에 대해서 "12월 정기국회에서의 개혁 입법 진행 상황을 반영해 공정위의 기업개혁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월쯤이 돼야 공정위의 인력 충원이 이뤄져 정상적인 업무가 가능하다는 점도 고려한 것이라는 나름의 조직 내부 '속사정'도 털어놨다.
그는 기업들이 "우리 사회의 어떤 조직보다 변화의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 일관성을 유지하면 기업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며 기업에 힘을 싣는 발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가 끝난 뒤 지난 4개월간 기업들의 개혁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인 출발"이라고 평가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업들이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앞으로도 개혁 드라이브의 끈을 더욱 강하게 틀어쥐겠다는 의지를 동시에 피력한 셈이다.
시간을 달라는 기업의 요구에 대해서는 "변화 결과가 아닌 변화 의지를 보여달라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의 시간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딱딱한 규제를 통해 칼춤을 추듯이 기업개혁을 할 생각이 없다"며 재벌개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제가 기업인에게 시간을 드릴 수 있도록 국민도 저와 공정위에 시간을 달라. 일관되게 예측할 수 있게 가면 변화가 서서히 나타날 것"이라며 공정위 재벌개혁 행보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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