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응답하라 김주혁

입력 2017-11-02 08:00
수정 2017-11-02 09:27
[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응답하라 김주혁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배우 김주혁은 말수가 적다.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면 기자가 진땀 흘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답이 대부분 단답형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특유의 심드렁한 태도도 그를 처음 겪는 이들을 적지 않게 당황시킨다. 거만하거나 도도한 것은 아닌데, 감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담담한 얼굴과 짧은 답변이 인터뷰하는 이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곤 한다. 빠른 속도로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도 적응하기 어렵다.

사실은 낯가림이다. 연기적으로는 포복절도할 개그부터 서늘한 악역까지 폭넓게, 자유자재로 오갔고 '국민 예능'인 '1박2일'을 통해 '허당' 매력까지 발산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20년차 배우지만 그는 여전히 낯가림이 있다.

하지만 안면을 트고 친숙해지면 김주혁은 다른 모습이다. 수다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장난기도 많다. 처음 보면 까칠한 게 아닐까 싶지만, 알고 보면 후배들에게도 권위적이지 않고 누구나 격의 없이 대하는 부담 없고 푸근한 스타일이다.

그래서 김주혁은 인기가 많다. 남자에게는 물론, 여자에게도. 후배들이 특히 따른다. '1박2일'을 통해 얻은 코믹한 애칭 '구탱이형'은 방송용으로 머물지 않는다. 김주혁을 알게 되면 그의 따뜻한 인간적인 매력에 모두가 빠져들었다. '동네 형' '동네 오빠'처럼 언제든 찾아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그는 시류에 편승하지도 않았다.

편안한 스타일이었지만 자신만의 고집은 확고했다. 20대 때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한창 '몸짱' 열풍이 불었을 때 따라갈 법도 했지만 그는 "왜 모두가 몸짱이어야 하냐. 자기만의 스타일이 다 있는 거 아니냐"고 딱 잘라 말했다. 배우라 어쩔 수 없이 체중관리를 해야 해서 인터뷰 현장에 고구마와 삶은 달걀을 들고 나와 투덜대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인기를 쫓지도 않았다.

그런 점은 의리와도 맥을 같이 한다. 그는 데뷔 이래 20년간 같은 매니저와 동고동락했다. 그 사이 연예계가 열두번도 넘게 바뀌고, 온갖 금전적인 유혹이 넘실댔지만 신인 때나 잘나가는 배우가 됐을 때나 김주혁은 변함이 없었고, 의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티를 안 내는 듯, 무심한 듯하면서도 속이 깊고 정이 깊다. 그런 그를 기둥 삼아 나무엑터스가 중견 기획사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이제 '과거형'이 됐다. 배우 김주혁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를 앗아간 사고가 너무 어이없고 황당해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그를 사랑했던 이들은 그저 가슴을 치며 슬프다는 말조차도 못하고 있다. 그가 작별인사도 없이, 궁금증만 남긴 채 떠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아깝고도 아깝다. 응답하라 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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