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정가 들불처럼 '미투'…장차관 가해·"자정기능 잃었다" 비판
총리 엄단경고·중재기구 설립지시에도 '고양이에 생선 맡기나' 반발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현직 차관에 이어 장관까지도 성추행 의혹에 휘말리는 등 영국 정가에서 성추행 논란이 거세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까지 나서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했으나 불신의 눈초리는 매섭기만 하다.
3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정계에서 잇따라 불거진 성폭력 피해 사례에 엄중 단속을 경고했다.
메이 총리는 하원의장에게 의원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알리고, 자발적으로 처리하게 돼 있는 고충처리 절차를 의무화하기 위해 독립적인 중재기구를 설립하도록 요청했다.
가디언은 이 같은 조치의 실효성이 의문이라고 지적하며 한 국회의사당 여성 직원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직원은 지난해 하원의원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며 메이 총리의 제안은 의원들 사이에 만연한 성폭력 사건을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여성은 "내게 일어난 일을 아는 사람 중 일부가 현재 망가진 시스템을 고치는 임무를 맡았다"며 "이들은 기껏해야 내가 당한 일에 눈을 감으려 했거나 최악에는 그 일을 덮으려 했던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고위 정치인들에게 이러한 일을 개선하도록 책임을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며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그들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이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원들의 예산집행을 감시하는 독립조직인 의회윤리감사기구(IPSA)처럼 의원들을 조사할 권한을 갖되 각 당과는 연계돼 있지 않은 조사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여성은 지난해 유럽 출장을 갔다가 남성 의원에게 호텔 방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와 몇 개월간 경찰과 의회윤리위원회, 하원, 해당 의원 소속 정당 등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경찰을 제외한 그 어느 기관도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발뺌했다고 주장했다.
그나마 경찰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어서 공식 조사에 착수하지 못했다.
캐스린 허드슨 윤리위원회 의장은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우려를 표하면서도 현 규정에 따라 아무런 조처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원 의회와는 회의를 열기로 약속했지만, 회의는 결국 취소돼 열리지 않았다.
문제의 의원이 속한 정당도 무신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여성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데 충격을 받았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는지 외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근 영국에서는 현직 장·차관, 의원 등이 연루된 성폭력 사건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영국 보수당 하원의원이자 국제통상부 차관인 마크 가니어는 여성 비서에게 성인용품 심부름을 시킨 사실이 알려져 조사를 받게 됐다.
또한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이 과거 콘퍼런스 만찬장에서 여성 언론인의 무릎에 손을 올린 일, 전직 각료인 스티븐 크랩 의원이 면접을 보러온 19세 여성 지원자에게 성적으로 노골적인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 등이 드러났다.
영국 대중지 더 선은 집권 보수당 의원들을 위해 일하는 남성과 여성 직원들이 익명으로 작성한 '성희롱 명단'에 전·현직 각료 21명을 포함해 보수당 의원 36명의 이름이 올라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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