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거수기 논란' 사외이사제도 손본다…내일 토론회 개최
연말까지 제도개선안 마련해 법무부와 금융위원회 등에 권고
"법조인·교수·사내출신 사외이사의 견제·감시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사외이사제도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지만, 제역할을 하지 못해 지난 20년 동안 끊임없이 '거수기' 논란에 휩싸여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말까지 제도개선안을 마련해 법무부·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에 권고하기로 하고, 1일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31일 밝혔다.
권익위 제도개선총괄과가 준비한 발제문을 보면 사외이사제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권익위는 사외이사 선임구조 자체가 지배주주 등의 견제·감시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본다.
지배주주 등은 '전직 관료 출신' 사외이사를 각종 위법·탈법행위, 세무조사 등 문제 해결의 창구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일반화돼 있다고 권익위는 지적한다.
실제 올해 3월 기준으로 30대 그룹의 관료 출신 사외이사 비율은 43.2%에 달했다. 부처별로는 법원·검찰, 청와대, 국세청·관세청, 기재부, 공정위·금감원 출신 등의 순으로 사외이사가 많았다.
특히 '법조인 사외이사'를 지배주주나 계열회사 등의 소송대리 또는 법률자문 목적으로 선임하고 있어 견제·감시 역할과의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그룹은 지배주주 일가의 소송, 계열사 상장, 구조조정 등으로 법률자문을 받을 일이 많아 대형 로펌 소속 사외이사를 지속해서 충원하고 있으며, 효성그룹 역시 지배주주 또는 계열회사의 소송과 관련헤 해당 로펌 소속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충원했다.
현행 상법 시행령의 사외이사 결격사유는 '주된 자문계약'을 체결한 로펌·회계법인·세무법인 등 소속으로만 한정돼 있고, 변호사법에도 사외이사와 관련해 겸직 및 수임제한 규정이 없어 손쉽게 법적 구속력을 피할 수 있다.
'대학교수 사외이사'도 지배주주 등에게 우호적인 인사 위주로 선임돼 기업경영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역할이 미흡하다고 권익위는 지적한다.
예컨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A교수는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 재임 중 SK씨앤씨와의 과도한 내부거래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있음에도 이사회에 56차례 참석(출석률 94.9%)해 100% 찬성의견을 냈다.
A교수의 사외이사 연봉은 6천500만 원으로, 그는 SK이노베이션뿐만 아니라 GS건설 사외이사(연봉 6천만원)도 겸직했다.
아울러 일부 사외이사의 경우 해당 기업 또는 관계계열사로부터 연구용역을 수탁해 도덕적 해이 논란도 초래했다.
서울대 B교수는 2012년 9월 인피니트헬스케어 사외이사로 선임 된 후 재직 중에 해당 업체로부터 3차례 연구용역으로 1억8천만 원을 수주했다.
이밖에 해당 회사·계열사 등 '사내출신 사외이사'의 결격사유를 퇴직 2∼3년 이내로 한정함에 따라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권익위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구성 시 CEO(최고경영자) 등 경영진의 참여, 기존 사외이사들의 연임추천과 관련해 '서로 추천'하거나 사내이사(CEO)가 기존 사외이사 연임 결정을 좌우하는 실정, 장기 연임 등의 만연한 행태도 독립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본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2016년 3월 주총에서 C씨를 재선임해 10년째 사외이사를 유지하고 있고, 현대글로비스는 D씨가 7년째 연임 중이다.
권익위는 ▲상법·금융사지배구조법 시행령 개정으로 '법조인 사외이사'의 결격사유 범위를 자문 및 송무계약을 체결한 법무법인 등의 소속으로 확대하고 ▲'대학교수 사외이사'의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겸직 기간을 포함 전후 2년 이내 연구용역 수탁 금지규정을 의무화하며 ▲'사내출신 사외이사'의 결격사유를 퇴직 후 2∼3년 이내에서 5년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위원 구성 시 CEO 등 경영진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사외이사 간 상호추천 금지규정 신설과 장기 연임 방지를 위한 연임 규정 명확화 등도 고려하고 있다.
권익위는 사외이사제도뿐만 아니라 '준법감시인 제도' 역시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2000년 10월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준법감시인 설치가 의무화돼 17년째 운영 중이지만 금융사고는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권익위는 토론회 등을 통해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토대로 사외이사·준법감시인 제도개선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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