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위 "박명진 등 문체부 산하기관장 블랙리스트 실행확인"

입력 2017-10-30 12:13
수정 2017-10-30 16:56
진상조사위 "박명진 등 문체부 산하기관장 블랙리스트 실행확인"

문학번역원 지원배제 첫 확인…신경림·박범신 등 피해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국립예술단체 작품 검열 사실 확인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30일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 박명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문체부 산하 기관장들이 구체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또한 박근혜 정부 때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한국문학번역원 사업에서도 정부 차원의 블랙리스트 지원배제가 있었고,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부터 국립예술단체의 작품을 검열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KT빌딩의 진상조사위 사무실에 가진 언론 브리핑을 통해 2015년 박 전 위원장이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을 만나 예술 현장의 동향을 보고하고 블랙리스트 관련 현안을 협의한 사실을 보여주는 '장관님 면담 참고자료' 문건을 공개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박 전 위원장과 문예위 직원은 블랙리스트 의혹이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처음 제기돼 예술 현장의 비판이 고조되던 2015년 10월 이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는 박계배 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가 박 전 위원장에게 예술 현장 동향을 보고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내용도 담겼다.

진상조사위의 김준현 진상조사소위원회 위원장(변호사)은 "이 문건은 박 전 위원장과 박 전 대표가 블랙리스트의 실행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관련 사안을 직원들과 협의하며 실제로 집행에 관여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위는 또한 한국문학번역원이 2015~16년 문체부에서 하달된 지시를 받아 이시영, 김수복, 김애란, 김연수, 신경림, 박범신 등 문인들을 해외교류사업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도 공개했다.

한국문학번역원 관련 블랙리스트 실행 사실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이시영, 김수복은 2016년 2월 미국 하와이대 및 UC버클리대 한국문학행사 관련 지원이 배제됐으며, 김애란과 김연수는 2015년 11월 미국 듀크대학에서 열린 북미 한국문학회의 초청 사업에서 배제됐다. 신경림과 박범신은 2016년 9월 중국 항주 한국문학행사에서 배제된 사실이 파악됐다.

김 위원장은 "특정 작가를 지원에서 배제하라는 문체부의 지시가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며 "구체적인 배제 사유가 무엇인지, 추가적인 블랙리스트 작동 사례가 있는지 조사를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한 연극 '개구리'에 대해 정부가 치밀한 사전 검열을 했음을 보여주는 '국립극단 기획공연 개구리 관련 현안 보고' 문건도 처음 공개됐다.

2013년 9월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에서 작성한 이 문건에는 당시 공연한 '개구리'의 정치적 편향적인 내용을 수정하도록 조치한 내용이 담겨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이는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블랙리스트가 실행됐고, 단순히 지원배제뿐 아니라 작품 내용에 대한 검열까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며 "2013년 국립극단 후속 작품은 물론 이후 전 국립예술단체 공연에 대해 내부 검열 시스템을 운용됐을 가능성이 커 관련 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개구리'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를 풍자한 작품이다. 문예위는 이 작품을 문제 삼아 연출을 맡은 박근형의 2016년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 대해 이미 결정한 지원을 취소하도록 심사위원들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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