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표 강행' 역풍…이라크 쿠르드수반 12년 통치 마감(종합)
국제사회 외면으로 독립 좌절…무리한 임기 연장으로 비판받아
쿠르드 내 정파 갈등 고조, 정국 혼돈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마수드 바르자니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 수반이 29일(현지시간) 자치 의회에 제출한 서한을 통해 수반에서 퇴임하겠다고 밝혔다.
바르자니 수반은 이날 서한에서 다음 달 1일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지 않겠다면서 수반의 권한을 자치 내각과 법원, 의회에 분산해 달라고 요구했다.
쿠르드 자치의회는 격론 끝에 이를 승인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국제사회의 만류와 반대를 무릅쓰고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한 핵심 인사다.
그러나 이달 16일 이를 구실로 이라크 중앙정부가 군사 작전을 벌였고, KRG가 사실상 관할했던 유전지대 키르쿠크 주를 순식간에 잃은 뒤 그의 정치적 '오판'이 거센 역풍에 휩싸였다.
KRG는 지난 3년간 이라크군을 대신해 이라크 북부에서 이슬람국가(IS)를 막아낸 전공을 바탕으로 민족적 염원이었던 독립 주권국 수립을 시도했지만, 국제사회의 외면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바르자니 수반은 2005년 자치정부 수반에 오른 지 12년 만에 "한 명의 페슈메르가 대원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는 의회 승인 뒤 성명에서 "현 상황은 독립투표 탓이 아니고 중앙정부가 예전부터 계획했던 일(KRG 흡수)의 핑계로 삼았을 뿐"이라며 "투표 즉시 독립선언을 하는 게 아니라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테러분자로 지정한 세력(시아파 민병대)이 미제 탱크로 우리를 공격하는 데 놀랐다. 미국이 알고 있었는지, 왜 저지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면서 자신들의 독립운동을 외면한 미국에 불만을 표했다.
그가 정계를 완전히 은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쿠르드민주당(KDP) 해외국은 바르자니 수반의 사의를 확인하면서 KDP 당수직은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독립투표를 진행한 위원회를 대신한 고등정치위원회의 의장을 맡을 것이라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오랫동안 집권한 그의 2선 퇴진으로 쿠르드 내 각 정파의 갈등이 고조하면서 정국이 극심한 혼란을 겪을 전망이다.
바르자니 수반의 퇴임이 보도되자 분노한 KDP 지지자들이 의회로 몰려가 정부 비판 매체의 기자와 야당 의원을 몽둥이로 폭행했다.
현지 언론들은 29일 밤 이들 지지자 중 일부가 총과 흉기를 소지하고 의사당을 포위해 야당 의원들이 안에 갇혔다고 보도했다.
바르자니 수반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IS 사태까지 이어진 혼란 속에서 쿠르드족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와 함께, 임기를 무리하게 연장하고 반대 세력을 탄압해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라크 쿠르드족의 독립 항쟁을 이끈 집안 출신인 그는 2005년 6월 선거 없이 KRG 수반에 올랐다.
2009년 7월 KRG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수반 직접선거에서 당선돼 2013년 8월 4년 임기가 끝났다. 그러나 당시 KDP가 장악한 의회는 정국 불안을 이유로 그의 임기를 2년 더 연기했다.
연장된 임기가 끝난 2015년 8월엔 IS 격퇴전 상황임을 내세워 국정 자문기구(슈라위원회) 요청을 근거로 논란 속에 임기를 또 2년 더 늘였다. 당시 자문기구는 '2년 뒤 수반 선거를 할 때까지'라고 했지만 올해 7월 선거가 또 치러지지 않고 다음 달 1일로 연기됐었다.
이조차 주요 정파에서 바르자니 수반의 출마를 예상하고 후보를 내지 않는 바람에 무기한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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