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년 맞은 세계기록유산…위안부 기록물로 '역사전쟁' 가열
제13차 국제자문위원회 종료…유네스코 사무총장 최종 결정만 남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사업 25주년을 맞아 또다시 동아시아 삼국이 벌이는 역사전쟁에 휘말렸다.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사와 세계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거나 사료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기록물을 보존하기 위한 사업으로 1992년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세계유산(World Heritage),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과 함께 유네스코 3대 유산으로 거론되지만, 명성이나 지위는 가장 낮은 편이다. 영문 명칭에도 '유산'(Heritage)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또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은 회원국들이 약속한 협약에 따라 진행되지만,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자체적으로 벌이는 사업이라는 차이점도 있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세계기록유산은 지난 2015년 중국이 난징대학살 문건과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를 신청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일제가 1937년 12월부터 중국 난징(南京)에서 시민과 무장해제된 중국 군인을 학살한 기록과 1945년 이후 전쟁 범죄자의 재판 관련 기록물로 구성된 난징대학살 문건이 등재되자 유감을 표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일본이 문제 삼은 부분은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 과정에서 이해 당사국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각국이 신청한 세계기록유산 후보의 최종 심사를 하는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사서, 법률 전문가, 저술가, 문서관리 전문가 등 4년 임기의 위원 14명으로 구성되며, 2년마다 개최되는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IAC가 등재와 관련된 의견을 정리해 유네스코에 전달하면 사무총장이 등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번에 한국과 중국, 일본, 타이완 등 9개국 15개 기관이 공동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심사한 제13차 IAC 회의 내용도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종료를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회의에서 IAC가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 판단을 유보했다고 보도했으나, 한국 정부는 "아직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객관적으로 심사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판단 유보 보도의 진위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정황상 사실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등재에 관한 최종 권한은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있지만, 사무총장이 IAC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IAC의 사전 심사에 해당하는 등재심사소위원회에서 '대체 불가능하고 유일한 자료'로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등재되지 않는다면 유네스코는 일본의 압박과 외교전에 굴복했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15년부터 세계기록유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제13차 IAC 회의를 앞두고 열린 유네스코 집행위원회는 사실관계나 역사 인식에 이견이 있을 경우 당사자 간의 대화를 촉구하고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를 보류한다는 내용의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일본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이 개혁안에는 세계기록유산 신청 후 최장 4년간 대화를 독려한다고 기간이 명시돼 있으나, 대화 결과를 판단할 주체나 조정자에 대한 세부 내용이 없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 관계자는 "유네스코는 미국이 탈퇴하면서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는 국가가 된 일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번에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등재되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외교전을 통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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