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에서 추상을, 추상에서 구상을 발견하다
PKM갤러리서 허넌 배스·정영도 2인전 개막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에 허넌 배스(39)와 정영도(32) 작가가 마주앉았다. 미국 마이애미 출신인 허넌 배스는 가냘픈 몸매의 소년들이 등장하는 구상회화로 일찌감치 세계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정영도는 현란한 색감의 추상회화 작업을 하는 신예 작가다.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는 두 작가에게서 어느 순간 서로 통하는 지점을 발견, 2인전을 제안했다. 이날 개막한 전시 '와일드 앤 아웃'(Wild and Out)은 같은 듯, 다른 듯 "내면의 와일드니스를 분출한" 작품 13점(허넌 배스 5점·정영도 8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정영도 작품을 온라인으로 처음 봤는데 저는 (추상회화) 안에 숨겨진 구상적인 면들을 많이 찾아보려고 했어요. 처음 볼 때는 추상 작품이지만, 구상적 면모가 있어요. 그런 이중성이 공통점인 것 같아요." (허넌 배스)
"허넌 배스 하면 인물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많이 생각하는데, 저는 반대로 그 인물 내면이 주변 환경이나 공기층을 통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생각했어요. 표면적으로는 구상일지 모르나, 추상적인 느낌이 있어요." (정영도)
앙리 마티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허넌 배스의 '목욕하는 사람들' 시리즈는 식물이 우거진 가운데 이야기를 나누거나, 종이 가면을 손에 든 소년들을 포착했다. 한가로움이나 여유로움 대신, 무엇인가 사건이 막 시작된 것 같은 긴장감을 주는 작품들이다.
정도영 '플라스틱 프로이트' 시리즈는 그보다 훨씬 화사하고 몽환적이지만, 또 다른 긴장감을 자아낸다. 정도영은 프로이트 전문가인 아버지(정도언 서울대 명예교수)가 끼친 영향이 크다면서 "이제 프로이트도 아버지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도영에게 프로이트가 있다면, 허넌 배스에게는 영국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있다. 허넌 배스는 "오스카 와일드는 작품에서 동성애 성향을 암호화한 형태로 많이 드러냈다"면서 "동성애 성향의 소년들이 성장하면서 성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한 순간들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질적인 듯, 또 어울리는 두 젊은 작가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전시 11월 25일까지. 문의 ☎ 02-734-8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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