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푸미폰 국왕 떠나는 날 방콕 전역이 장례식장 …30만 운집
도시 곳곳 모형 장례식장에도 검은 상복 물결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70년간 태국의 왕좌를 지키며 신(神)으로 추앙받던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의 장례식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장례식 이틀째이자 국왕의 시신이 화장터로 운구되는 26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장례식장인 방콕 왕궁 인근 사남 루엉 광장으로 가는 길은 검은 상복을 입은 조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교통통제가 시작되기 전인 새벽 4시 40분 탐마삿대학을 통과하는 도로변 인도에는 장례식장에 들어가기 위해 밤을 새운 조문객 행렬이 3∼4㎞는 족히 되어 보였다.
장례식장을 둘러싼 보행자 도로는 인파에 묻혔고 오전 6시를 기해 왕궁을 둘러싼 3면의 도로가 열리자 상복을 입은 조문객들이 서둘러 담장 밑으로 달려가 자리를 잡았다.
오전 7시 30분 예정보다 30분가량 늦게 푸미폰 국왕의 시신과 유골함을 왕궁에서 장례식장으로 운구하는 의식이 시작됐다.
그러나 행사가 계속 지연되면서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예포(禮砲) 신호와 함께 근위병들이 도열했고, 그로부터 40분가량이 지난 후에야 장중한 나팔 소리와 함께 운구 행렬이 왕궁 앞 삼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4시간 이상을 기다린 조문객들은 그러나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고, 운구 행렬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나마 햇볕을 가리던 검정 우산마저 접고 국왕의 사진을 손에 들거나 땅에 엎드려 절했다.
태국 최북단 치앙라이에서 장례식을 보기 위해 사흘 전에 와 줄을 섰다는 한 여성은 "푸미폰 국왕은 태국인들의 아버지다. 아버지가 떠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며 "29일 장례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2.5㎞에 달하는 긴 운구 행렬은 기마대를 시작으로 육·해·공군 의장대와 전통의상을 한 군악대가 뒤를 이었고, 이어 승려를 태운 수레, 국왕의 시신과 유골함을 실은 '왕실 전차'가 전통 복장의 군인들에 이끌려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행렬의 맨 끝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이끌었고 이어 상주인 와찌랄롱꼰(라마 10세) 국왕과 짜끄리 시린돈 공주 등 푸미폰 국왕의 자녀들도 푸미폰 국왕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당국은 이날 장례식장 내부에만 11만 명의 조문객이 입장했다고 밝혔지만, 현지 언론은 장례식장과 주변에 30만 명 이상이 운집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로 시신 운구 행사가 종료된 오후 1시께 장례식장 동쪽 국방부 건물을 지나치자 장례식장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담장 너머로 애타게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또 국방부 건물에서 교통이 통제된 2㎞ 구간의 밤룽 무엉 도로에도 상복을 입은 조문객들이 빼곡히 줄을 선 채 자신의 입장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남성은 "이틀 전에 도착했는데 아쉽게도 오늘 장례식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비록 국왕 시신운구행렬을 못 봤지만 앞으로 장례식이 사흘 남았으니 계속 차례를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조문객들이 붐빈 곳은 장례식장뿐만이 아니었다.
지상전철(BTS) 시암역 근처에 밀집한 시암파라곤과 센트럴월드 등 대형 쇼핑몰 앞에도 상복을 입은 조문객 줄이 도로변까지 이어져 있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지 못한 조문객을 위해 장례식장 축소 모형이 설치된 곳이다.
태국 정부는 방콕 시내 9곳과 태국 전역의 76개 주에 1곳씩 총 85곳에 모형 장례식장을 설치했다.
현지 영자지 방콕포스트는 이날 태국 전역에 설치된 모형 장례식장에도 상경하지 못한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남부 수랏타니주(州) 끌랑마이 사원에 마련된 모형 장례식장에는 새벽 6시 이전에 2만 명 이상이 줄을 섰고, 북부 펫차분주(州)에서는 최소 20만 명 이상이 조문할 것으로 주 정부 당국은 예측했다.
한편, 장례식장으로 운구된 푸미폰 전 국왕의 시신은 상주인 와치랄롱꼰 현 국왕 주재 아래 이날 밤 10시부터 화장 의식을 치를 예정이다.
화장 후 수습된 유골을 27일 다시 왕궁으로 옮겨지고, 이틀간의 기도회를 거쳐 29일에는 왕궁 근처 2개의 사원에 안치된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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