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리더' 신화 타파해야…우리에겐 변혁적 리더 필요"

입력 2017-10-26 18:39
수정 2017-10-26 18:47
"'강한 리더' 신화 타파해야…우리에겐 변혁적 리더 필요"

영국 정치학자 아치 브라운 저서 국내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최순실 게이트가 몰고 온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은 정치 지도자 자질과 리더십을 둘러싼 논의를 촉발했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 '제왕' 대통령이 더는 탄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뤘다.

영국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아치 브라운이 쓴 '강한 리더라는 신화'(사계절 펴냄)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강한 지도자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거의 대부분 나라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을 강하게, 상대를 약하게 묘사하려 애쓴다. 대중의 머릿속에도 이러한 강약의 이분법이 뿌리내려 있다.

책은 영국, 미국, 중국 등 각국의 현대 정치문화를 분석하면서 재정의형, 변혁적, 혁명적,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지도자로 구분 짓는다.

자신이 서 있는 곳으로 중심을 옮기고 정치 풍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재정의형(redefining) 지도자의 대표 사례는 뉴딜 정책을 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다.

이보다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유형이 변혁적(transformational) 지도자다. 그들은 정치 혹은 경제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간다. 유토피아를 외치지만 기존 정권을 축출한 다음에는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혁명적(revolutionary) 지도자와는 구분된다.

저자는 매우 드문 변혁적 지도자의 예로 샤를 드골, 미하일 고르바초프, 덩샤오핑, 넬슨 만델라 등을 꼽았다. 미국 역사상 마지막 변혁적 지도자가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링컨은 불굴의 지도력, 라이벌까지 끌어안는 포용력 등을 통해 합중국이 쪼개질 위기를 막아냈고, 노예제라는 '잔인한 부조리'를 종식했다.

저자는 마거릿 대처보다 토니 블레어가 일반의 인식과 달리, 내각을 우회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주장도 편다.

책은 수많은 지도자를 언급하면서 강한 지도자가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넘치는 인물처럼 여겨지지만, 그 이미지 또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의견 불일치를 용납하지 않았던 리더들이 남긴 수많은 실패는 가히 기념비적이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변혁적 지도자이지만, 그보다 앞서 해야 할 일은 '강한 리더'라는 신화의 타파다.

'선거의 여왕' 식으로 선거 승리를 지도자 업적으로 돌리는 행태, 문제 해결을 독점하는 지도자를 신뢰하는 문화가 결국 제왕 대통령(총리)를 낳고, 국가 전반에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몰고 오기도 한다.

"강함은 역도 선수나 장거리 달리기 선수를 평가할 때나 적절하다."

원제 The Myth of Strong Leader. 홍지영 옮김. 600쪽. 2만9천800원.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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