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관여 추정 北남성 CCTV영상 추가로 공개(종합)
공항서 각자 역할 확인한 뒤 김정남 도착 기다려
공격 후엔 옷 갈아입고 수염까지 깎아…즉각 해외도주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에 관여한 북한인 용의자들로 추정되는 남성들의 모습이 담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내 CCTV 영상이 추가로 공개됐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26일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열린 김정남 암살사건 공판에서 범행 당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촬영된 CCTV 영상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 영상은 '하나모리'란 가명을 쓰는 동양인 남성이 지난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다른 공범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하나모리는 암살 결행 시각 90분 전쯤 북한 외무성 소속 홍송학(34)으로 추정되는 '장'과, '와이'로 불리는 남성 등 두 명과 같은 차를 타고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장과 와이는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여)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29·여)의 손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직접 발라주며 김정남을 공격하도록 지시한 이들이다.
공항내 CCTV에는 하나모리가 공격을 앞두고 장, 와이와 각각 만나 뭔가를 상의하는 모습이 찍혔다.
그는 올해 초 쿠알라룸푸르 현지에서 시티 아이샤를 포섭한 공범 '제임스'와도 접촉했다. 제임스의 정체는 북한인 용의자 리지우(30)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 당국자인 완 아지룰 니잠 체 완 아지즈는 "조사 결과 하나모리는 이번 사건의 지휘자 역할을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장과 와이는 야구모자와 티셔츠, 배낭 차림이었으며 장은 비닐봉투를, 와이는 물통을 각각 손에 든 채 김정남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이들은 김정남에 대한 공격이 성공하자마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모자와 배낭 등을 버렸다. 장은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려고 턱수염까지 깎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모리와 장, 와이는 다시 차에 올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으로 이동했다. 이들이 이용한 차량은 사건 초기 체포됐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북한인 용의자 리정철(46) 소유의 도시형 밴이었다.
비슷한 시각 제임스는 공항내 호텔에서 체크아웃 절차를 밟은 뒤 제1터미널 출국장에서 다른 공범들과 합류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말레이시아 경찰은 홍송학과 오종길(55), 리지현(33), 리재남(57) 등 북한인 용의자 4명이 사건 당일 출국해 인도네시아와 두바이, 러시아 등을 경유해 북한으로 도주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현지 검경은 하나모리와 와이가 오종길이나 리지현, 리재남인지 여부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완 아지룰은 남성 공범 4명의 신원과 관련해선 가명 외에 확인된 정보가 없다면서 말레이시아 경찰청 특수부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행적을 쫓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이 자국내의 말레이시아인을 전원 억류해 인질로 삼자 지난 3월 말 김정남의 시신을 넘겨주고 관련 수사를 사실상 종결한 상태다.
동남아 현지에선 말레이시아 정부가 억류된 자국민을 귀환시키려고 북한 정권과 타협을 하는 바람에 '깃털'에 불과한 여성 피고인들만 희생양이 됐다는 동정여론이 일고 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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