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황제노역' 막기 위해 노역장 하한선 정한 형법 합헌"
"소급적용 허용한 형법 부칙은 위헌…시행 후 범죄부터 적용 가능"
"범죄행위 당시보다 불이익한 법률을 소급적용하는 건 허용 안 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이른바 '황제노역'의 폐해를 막기 위해 벌금 액수에 따른 노역 기간의 하한을 정한 형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다만 이 조항을 개정법 시행 이전 범죄에도 소급적용하도록 한 형법 부칙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헌재는 26일 천모씨 등이 고액 벌금을 선고받았지만 내지 않을 경우 노역장에 유치하게 하고 최소 일정 기간은 노역하도록 강제한 형법 제70조가 헌법에 어긋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했다.
2014년 5월 개정된 형법 70조는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이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노역장 유치 기간을 정할 때 벌금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 300일 이상, 5억원 이상이면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이면 1천일 이상을 선고하게 했다.
이는 돈 많은 기업가 등이 고액 벌금을 받고도 내지 않고 버티다가 노역장에 유치되는 경우 하루 노역 일당이 수백만원 등에 달하는 등 비정상적으로 산정돼 문제라는 지적이 일면서 개정된 것이다.
헌재는 "노역장 유치 조항은 벌금 액수에 따라 단계별로 유치 기간의 하한이 증가하도록 해 범죄의 경중이나 죄질에 따른 형평성을 도모하고 있고, 노역장 유치로 벌금형이 대체된다는 점에서 그로 인한 불이익이 노역장 제도의 공정성과 형평성 제고라는 공익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헌재는 천씨 등이 개정된 조항을 소급적용하도록 한 형법 부칙 2조 1항 등이 형벌불소급원칙 등에 어긋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형법 부칙 2조 1항은 형법 70조를 시행일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법 시행 전에 범죄를 저질렀어도 검찰이 재판에 넘긴 시기가 법 시행일 이후면 개정 조항을 소급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2006년 8억원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2015년 6월 기소된 천씨 등은 법원이 벌금 120억원과 1천일의 유치 기간을 선고하자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노역장 유치는 벌금형에 부수적으로 부과되는 처분으로 그 실질은 징역형과 유사한 형벌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동일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에게 노역장 유치 기간이 장기화되는 등 불이익이 가중된 때에는 범죄 행위시의 법률에 따라 유치 기간을 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치 기간의 하한을 중하게 변경시킨 형법 70조는 시행일 전에 행한 범죄행위에는 적용할 수 없는데도 이를 적용하도록 해 형벌불소급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형법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한다'고 규정해 '행위시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예외로 '범죄 후 법률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거나 형이 구법보다 경한 때에는 신법에 의한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재판 당시의 법(신법)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경우에는 신법을 적용(재판시법주의)한다.
문제가 된 형법 부칙은 이 같은 형법 원칙과 헌법 원리에 어긋난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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