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석 달 후면 시행인데 의료진도 잘 모르는 '웰다잉법'

입력 2017-10-25 20:45
[연합시론] 석 달 후면 시행인데 의료진도 잘 모르는 '웰다잉법'



(서울=연합뉴스)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웰다잉법)의 내년 2월 발효를 앞두고 정부가 3개월간의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대병원 등 전국 13개 대형 의료기관이 맡은 시범 사업에는 두 가지 형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하나는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본인이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담아 의료기관에 제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말기 또는 임종기 환자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4가지 연명 의료를 아예 받지 않거나 도중에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하는 것이다. 시범 사업 기간에 작성된 '의향서'와 '계획서'는 내년 2월 가동되는 국가 등록시스템에 등재돼 추후 존엄사 선택 시 법적으로 유효한 서류로 인정받는다. 시범 사업 개시 이틀 만에 여성 말기 암 환자 한 명이 '계획서'를, 건강한 시민 37명이 '의향서'를 작성했다니 관심이 높다고 할 만하다.

국내에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처음 연 것은 대법원이다. 대법원은 2009년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가족이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세브란스 병원 김 할머니 사건'에서, 본인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땐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2013년에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존엄사 제도화를 권고해 활발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었다. 그러다가 작년 1월에야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해 사망자의 약 20%가 항암치료를 받거나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죽음에 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를 바꿀 때가 됐다고 본다.

논란이 많았던 법인 만큼 시범 사업 기간에 점검해야 할 것도 많다. 무엇보다 상속 목적이나 치료비 부담 등 경제적 이유로 존엄사가 악용될 소지를 완벽히 차단해야 한다. 시행을 앞둔 관계법에는 존엄사 선택권을 말기 환자 본인이 가진다고 돼 있다. 하지만 환자의 의식이 없거나 '사전의향서'가 등록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악용할 틈이 생길 수도 있다. 관계 당국은 시범 사업을 하면서 법률상 기준과 절차가 그런 문제를 막기에 충분한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큰 의미를 가진 이 법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시범 사업 개시에 맞춰 발표된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존엄사 선택에 필요한 두 가지 서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환자와 보호자 250명 중 "알고 있다"가 33.2%, "모른다"가 66.8%로 나타났다. 일반인(500명) 중에는 "알고 있다"가 20.4%, 의료진(250명) 중에는 38.8%에 불과했다. 웰다잉법 발효까지는 이제 겨우 석 달가량 남았다. 시범 사업 기간에 대국민 홍보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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