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불서비스" 성업, 현금 급한 비정규직 증가 탓

입력 2017-10-26 07:00
수정 2017-10-26 08:03
일본 "가불서비스" 성업, 현금 급한 비정규직 증가 탓

가계 책임 근로자 4분의 1 비정규직, 7가구 중 1가구는 저축 없어

시스템 이용료로 3~5% 징수, 연리 환산 200% 넘어 "위법"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에 요즘 월급날 전에 급료를 당겨 지급해 주고 이자조로 비싼 수수료를 받는 '가불서비스' 업체가 크게 늘고 있다. 서비스 업체 중에는 기업에 가불시스템 도입을 권장하는 영업활동을 활발히 펼쳐 이용 가능한 대상자가 100만 명이 넘는 업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금융과 IT(정보기술)를 융합한 핀테크 기업 등 가불서비스 제공업체가 지난 수년간 20여 개사로 늘었다. 금융청 당국자는 지난달 초 "일한 만큼의 급여를 급여일 전에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기업에 제공하는 업체 리스트를 보고 "이렇게 많으냐"며 크게 놀란 것으로 전해졌다.

가불서비스 업체들은 "언제든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도입한 기업에 근무하는 종업원은 급여일이 아니더라도 일한 일수(日數) 범위내에서 수시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다. 월급날엔 인출한 금액과의 차액이 지급된다.

내년 대학졸업 예정자의 90% 이상이 이미 취업이 결정됐고 현재의 경기가 2차대전 후 두 번째로 긴 '이자나기경기'(1966~70년 4년 9개월 지속)를 이미 능가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일본에서 뜬금없이 가불서비스 업체가 성업 중인 이유는 뭘까.

노동문제 등을 상담하는 NPO(비정부기구) 법인 POSSE를 운영하는 곤노 하루키 대표는 "매일 현금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비정규 근로자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의 약 4분의 1은 비정규직 근로자다. 7가구 중 1가구는 저축이 아예 없다. 도쿄(東京) 도내에 사는 후지노 마사미(48)씨는 "교통비조차 어려울때도 있어 그날그날 품삯을 받는 날품팔이나 가불을 받을 수 있는 일을 골라 한다"고 말했다.

"날품팔이"라는 명칭으로 가불서비스를 제공하는 BANQ가 서비스 도입기업의 이용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용자의 48.6%가 "생활비"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하시 사장은 "이용자의 8-%가 20~30대"라고 귀띔했다.

소비자금융 등에 관한 규제강화와 표리를 이루는 측면도 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과 금융청 등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 15조 엔(약 150조 원)이던 소비자금융과 은행 카드론 대출 잔액은 최근 6조 엔 이상 감소했다. 대신 이 감소분을 채울 정도로 가불서비스가 늘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인재확보로 연결하려는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올해 7, 8월 유효구인배율은 1.52로 거품 경제기 수준을 넘어섰다. 가불서비스를 제공하는 페이먼트 테크놀로지의 우에노 도루 사장은 "일손 부족으로 '날품팔이도 좋다'는 구인업체가 늘어나는 바람에 가불서비스 업체가 한꺼번에 늘었다"고 말했다. 가라오케 점포 등을 운영하는 시닥스는 2015년 이 서비스를 도입한 후 구인 응모자가 배로 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개중에는 법적으로 위험한 사례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불서비스 업체의 사업 모델은 크게 보아 2가지다. 하나는 기업이 일정액을 조성해 놓고 종업원이 신청할 때마다 현금을 인출하는 방식이다. 이용횟수 등에 따라 기업이 업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한다. 또 하나는 업자가 종업원에게 급여를 대신 선지급하고 기업이 나중에 정산하는 방법이다. 위법소지가 있는 건 후자의 경우다.

기업을 대신해 급여를 선지급해 주는 업자 대부분은 현금을 인출할 때 종업원에게서 3~5% 정도의 "시스템 이용료"를 받는다. 이런 방식은 "급여일까지의 이자를 떼고 돈을 빌려주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급여일 열흘 전에 현금을 인출할 경우 6%의 시스템 이용료를 이자로 간주하면 연리로 환산할 경우 219%가 된다. 대금업 출자법의 금리 상한인 20%의 약 11배나 되는 고금리다. 급여에서 원천공제하는 형식으로 기업이 정산하기 때문에 떼일 염려도 적다.

업자의 대부분은 "가불이 아니라 선불이다. 복리후생 서비스의 하나"라며 대금업 등록을 하지 않고 있지만, 다중채무문제에 밝은 미키미 오사무 변호사는 "탈법적인 고리 대출로 보이는 업자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기준법에 저촉될 우려도 있다. 이 법은 중간착취를 막기 위해 임금은 고용자가 직접 한꺼번에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급여 대리 선지급은 원칙적으로 위법이며 이 시스템을 도입하는 기업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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