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폭력 이제 그만] ③ '상명하복' 병원문화 개선돼야

입력 2017-10-25 14:14
[전공의 폭력 이제 그만] ③ '상명하복' 병원문화 개선돼야

의료현장에 '상명하복' 필요하지만, 남용이 문제

"수련병원내 예방기구 상설화하고 가해자 일벌백계해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지난해 서울 모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전공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해 취재에 들어갔다. 학교 측이 이미 해당 교수가 전공의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징계절차를 논의하는 중이라 사실관계가 명확했지만,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해 교수는 성추행 논란이 일자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다른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결국, 당사자들 대신 주변 전공의나 교수들을 대상으로 취재해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때 자신이 성추행 피해 전공의임을 자처하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다짜고짜로 기자에게 취재를 중단해달라고 읍소했다. 그 이유를 묻자 "교수가 징계를 받아 나가더라도, 내가 병원에 남아있는 한 다른 교수님들과 계속을 부딪쳐야 하지 않느냐. 교수님과의 관계에서 상명하복이 기본인데, 기사가 나가면 내가 누구인지 결국 노출될 것이고, 그러면 피해는 고스란히 나한테 돌아온다"는 하소연이었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전공의들이 이처럼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 성추행 등의 피해를 보는 것도, 그리고 이런 피해에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는 것도 모두 도제식 병원문화에서 비롯된 '상명하복'의 남용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이런 상명하복의 남용은 교수와 제자의 관계는 물론이고 전공의 간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와 대한전공의협회가 전공의 1천7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10.8%가 교수는 물론이고 상급 전공의에게 신체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폭언을 당했다는 응답자는 각각 32.8%, 34.1%로 폭행보다 더 심했다.

특히 성희롱은 해를 거듭해 더욱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조사 당시 성희롱을 당했다고 답한 전공의 비율은 29.7%로 전년(2015년)의 25.5%보다 더 늘었다.

여성 전공의만 보면 절반 가까운 45.5%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21.1%는 성추행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이러다 보니 전공의 수련환경에 대한 만족도 역시 떨어졌다. 근무 시간 감소에도 전반적인 수련만족도는 평균 64.8점에 그쳤고, 수련과정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64.4%에 불과했다.

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현장에서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간의 상명하복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만,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이를 남용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명하복의 남용을 막기 위한 예방책을 구체화하고, 폭행·성추행 등의 문제를 일으킨 교수나 선배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이 소장은 제안했다.

이 소장은 "일반적인 교육차원이 아니라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실어 전공의를 때리고, 모욕을 주는 등의 행위를 일삼은 교수에 대해서는 의료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등의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또 도제식 문화에 길들어 있는 의사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교육기회를 주기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선 수련병원이나 대학 차원에 예방기구를 상설화하고, 조사를 전담할 기구를 만들어 징계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대학의 경우 폭력사건이 신고되면 인권센터에서 조사한 후 가해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아직 대부분의 병원에는 그런 조직이 없거나 있어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대희 서울대의대 학장은 "전공의 폭력을 예방하려면 단기적으로 가해자를 일벌백계하고 인권보호조직을 개편하는 게 최선의 조치"라며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각 의과학대학이나 병원 내에 잘못된 상명하복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지를 살펴 병원문화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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