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년] "촛불 민심은 국가 개조하라는 국민의 명령"
전문가들 "촛불집회, 대의민주주의에 광장민주주의 결합"
"적폐청산 요구는 대의제 협치 어렵게 만들 우려" 지적도
시민들 "양극화 해소·공정성 회복…적폐청산 과제 산적"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섰는데 100만이나 되는 촛불을 보니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비선 실세니 국정농단이니 하는 말들에 응어리진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사전편찬자인 문오선(38)씨는 1년 전 촛불시위에 나선 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어 문씨는 "'정치가 바뀐다고 뭐가 바뀌겠느냐'는 생각에 정치를 남일로만 여겼는데 촛불집회를 계기로 국민이 정치를 바꿀 수 있고 정치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국회가 받들고 국민의 힘으로 부패한 권력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었다는 게 보람이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29일은 문씨처럼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날이다.
주말마다 서울과 전국의 도심을 밝힌 촛불집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끌어냈고 이른바 '촛불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광화문에 처음 촛불이 밝혀진 날로부터 1년이 지났고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여전히 '촛불 민심'은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 촛불 민심의 키워드는 '적폐청산'
시민들은 촛불의 민심이란 양극화 해소와 공정성의 회복이라고 입을 모았다.
청소노동자 배옥식(57)씨는 "정치가 바로 서야 사회에 공정한 분배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재벌개혁과 양극화 해소를 과제로 꼽았다.
배씨는 다만 "아직 시민들이 촛불집회 때 요구했던 '시민을 위한 정치'가 실현되지는 않았다"며 "저임금과 고용 불안,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고 공정한 부의 분배를 요구하기 위해 이번 주말 다시 촛불을 들겠다"고 말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촛불 혁명에 담긴 시민의 뜻을 자유권의 확대와 적폐청산으로 봤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장기적 과정에서 볼 때 한국의 촛불 혁명은 유럽의 부르주아 혁명이 했던 역할을 완성했다고 본다"며 "가장 큰 성과는 '자유권'의 확보"라고 규정했다.
이어 최 교수는 "아울러 촛불의 민심은 맹수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기제들에 대한 강력한 요청"이라고 분석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 민심의 핵심 키워드로 '적폐청산'을 꼽았다.
장 교수는 "촛불집회는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로 촉발됐지만 이내 촛불 민심은 적폐청산 요구로 바뀌었다"며 "국정원과 사법부, 불공정한 시장거래 질서 등 전방위적 측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촛불집회에 대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직접민주주의로 보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촛불집회는 광장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결합이었다"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내린 결론을 기존 대의기구에 전달하며 국가를 새롭게 개조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시민의 정치 참여 일상화…"변화 아직 멀었다" 지적도
촛불 혁명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시민들은 촛불집회를 계기로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토론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민지(35·여)씨는 "새 정부의 움직임이 1년 전 촛불들이 외쳤던 방향과 그럭저럭 일치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며 "촛불집회 이후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과 토론을 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모(28·여)씨는 "정치적 이슈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정책 형성 과정이 투명해졌고 신뢰도가 높아졌다"며 "촛불 혁명이 아니었다면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 같은 숙의민주주의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촛불집회를 계기로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내게 됐다는 시민도 있었다.
하지만 삶의 현실이 1년 전과 크게 달라진 바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촛불집회에 매번 참석했다는 김도형(30)씨는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모두 제각각 삶의 자리로 되돌아갔고 정치적 무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며 "산적한 과제들은 많지만, 여전히 다수의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적폐청산 요구, 대의제의 협치에는 한계"
촛불 혁명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장덕진 교수는 "촛불이든 어떤 형태든 시민들이 자기의 정치적 요구를 공공연하게 제시할 수 있는 시민적 권리가 있는 건 당연하고 존중돼야 할 일"이라면서도 "다만 이런 요구가 지나치게 강한 압박 형태로 나타나게 되면 기존 대의제에선 협치를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 교수는 "대의제와 시민민주주의 사이의 균형을 찾을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촛불 혁명의 완수를 위해 시민들의 지속적인 감시와 참여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임혁백 명예교수는 "변화의 속도는 더딜지라도 적폐청산 과정의 부작용을 줄이면서 가는 것이 정도(正道)로 보인다"면서 "그렇다고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서 지켜보자'고 해서는 안 된다. 계속 참여하는 시민으로서 요구사항을 말하고 정부와 국회가 국민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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