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만의 귀가'…백발 아내 품에 유해로 안긴 스물여덟 병사
(성남=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애들 잘 키우고 아까워 생각하지 말고 얼른 피난 가라고 하고 떠났는데 그게 유언이 됐네요. 못 찾을 줄 알았는데 66년 만에 돌아왔네요."
2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한 아파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유품을 들고 집 안에 들어서자 6·25 전쟁 당시 노전평전투(1951.8.9∼9.18)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 김창헌(당시 28세·1924년생) 일병의 아내 황용녀(94) 씨가 손을 맞잡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오래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일도 다 있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김 일병은 1924년 경기 안성시 삼죽면 용월리에서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삼죽면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1944년 황 씨와 결혼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한 그는 남겨둔 딸과의 유전자 시료 비교분석 결과를 담은 신원확인통지서와 함께 백발의 할머니가 된 아내의 품으로 뒤늦게 돌아왔다.
국방부는 2000년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후 이날까지 125구의 호국 영웅 유해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세월이 오래 흘러 공식적인 전사 통보조차 받지 못한 채 남편 곁으로 세상을 떠난 전사자의 아내들이 대다수이지만, 황 씨는 오랜 기다린 끝에 그리던 남편의 유해를 찾고 유품도 품에 안았다.
1951년 1월 28세의 나이로 입대한 김 일병은 국군 8사단 10연대 소속으로 그해 8월 25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노전평전투에서 전사했다.
아내 황 씨는 "남편이 입대했을 때 임신 중이었고 남편도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아들이라고 생각해 '인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전쟁터로 갔는데 그 애가 열흘 후 딸로 태어났다"고 회상했다.
이어 "남편이 떠난 뒤 얼마 지났을까, 큰애(아들)를 등에 업고 임신한 몸으로 고향(경기 안성)을 떠나 대전까지 피난 가는데 말도 못하게 고생했고, 남의 일 하며 애를 키웠다"며 손을 내저었다.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고 키운 큰아들은 당시 다섯 살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전쟁 중에 홍역을 앓아 세상을 떠났고 했다.
황 씨는 생전에 남편의 유해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 고향 땅에 나란히 묻힐 묘지도 마련해뒀는데 유해를 찾았다는 것을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딸 김인석(67) 씨는 "아버지를 찾았다는 얘기를 처음 듣고는 뭉클했는데, 가라앉히기가 힘들어 한참을 울었다"고전했다.
김 일병의 외손녀(44)는 "처음에는 다들 긴가민가했다"며 "유해발굴단에서 할아버지 유해를 발굴한 직후인 7월 초 인식표와 도장 사진을 가지고 집에 찾아와서야 믿어졌다"고 했다.
그는 "엄마도 군의 연락을 받고 처음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고 저도 발굴단 사무실로 몇 번이나 전화로 확인했다가 엄마한테 '믿어야지. 그러다가 아니면 어떡해'라며 야단맞기도 했다"며 가슴 졸였던 최근 몇달 간의 심경을 전했다.
고인의 유해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서울이나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김인석 씨는 "오고 가는 길이 멀더라도 묘지 공간이 부족한 서울보다는 대전 현충원에 모시고 묘지를 만들어 자주 찾아뵙고 싶다"며 "아버지도 찾았으니 이제 엄마가 마음 편히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2000년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후 국군전사자 1만여 구를 발굴했지만 이날 가족 품으로 돌려보낸 김 일병까지 125명의 신원만 확인돼 유해가 발굴된 전사자가 가족을 만난 확률은 약 1%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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