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접촉 두고 방문로비 잡겠다는 공정위…'구멍' 대책 논란
직무 관련 없으면 외부교육 등 접촉 허용…보고 의무도 면제
권력기관 외압 대책 빠져…로펌 직원 등록 대상 '사건 경력자'에 한정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퇴직자 전관예우 근절 등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음성적인 접대·청탁 문화가 만연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로펌의 부정청탁이 주로 공정위 외부에서 이뤄지는 점에 비춰보면 외부접촉 관리체계 개선보다 공정위 방문자에 대한 통제에 집중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24일 발표한 '외부인 출입·접촉 관리방안 및 윤리 준칙'은 공정위를 출입하는 대기업·로펌 직원 중 퇴직자 등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자를 등록 대상으로 정해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즉 등록 대상이지만 등록하지 않은 대기업·로펌 직원의 사무실 내외 면담을 전면 금지하고 등록자에 대해서는 서면보고를 통해 면담 내역을 촘촘히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조사, 토론회·세미나·교육프로그램 등은 "사회 상규상 허용해야 한다"며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접촉을 전면 허용하고 아예 보고 의무도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과 세미나 등을 금지할 수는 없지만 이를 빙자한 정기적인 만남은 유착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만큼 최소 현황 관리를 통해라도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국감에서는 공정위 직원과 공정위 출신 로펌 전문위원이 대기업 대관 담당자들과 무려 석 달간 같은 조에 속해 외부교육을 받고 있지만 관련 내용이 전혀 보고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교육 과정에는 2박 3일의 해외워크숍, 1박 2일의 국내워크숍도 포함됐지만 공정위는 "공식 교육 프로그램"이라며 별도로 관리할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단순히 수업만 듣는 것이 아니라 조를 편성해 국내외 연수까지 다녀온다면 기업, 로펌 관계자들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대책은 공정위를 방문하는 대기업·로펌 직원에 대한 윤리 준칙을 강조하고 있어 주로 부정청탁이 외부에서 이뤄지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공정위의 '인맥'을 활용해 부정한 청탁을 하려는 사람이 공정위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의도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흔치 않다는 것이다.
공정위에 대한 청탁은 전화나 공정위 외부에서 은밀히 이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공정위 부위원장을 지낸 서동원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은 2015년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에게 처분 주식 수를 낮춰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CJ E&M[130960] 길들이기 조사 등 청와대 등 권력기관을 통한 외압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도 강하지만 이번 대책에는 관련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청와대 외압 등에 대한 개선책은)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이번 대책은 피조사기업, 대리 변호사, 공정위 퇴직자 등의 부적절한 접촉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등록 대상 로펌 직원을 공정거래 업무 담당자가 아닌 '공정위 사건을 담당한 경력이 있는 자'로 한정한 점도 허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정위와 로펌 간 유착은 사실상 고위 간부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어 개별 변호사와의 만남보다는 로펌 전반에 대한 접촉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윤리 준칙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공정위 출입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는 있지만 공정위 직원에 대한 적발 수단과 엄중한 처벌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통화내역 제출 등 효과적인 적발 수단도 제시하지 못했다.
전 사회적인 공정위 개혁 주문에도 공정위 내부 개혁 의지는 여전히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신 부위원장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앞으로 보완하도록 하겠다"며 "다만 규제가 강화되면 정상적인 만남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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