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신고리 공론조사에 담긴 '국민의 뜻' 제대로 읽기를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일시 중단됐던 건설 공사를 조속히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정부가 이미 천명한 대로 탈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전환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틀 전 공론화위의 대 정부 권고 발표 이후 처음 나온 문 대통령의 공식 메시지이다. 하지만 별도 기자회견은 하지 않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에 대한 대통령 입장'이라는 서면 메시지를 택했다. 정부는 오는 24일 국무회의에서 공론화위 권고 내용을 담은 탈원전 로드맵을 의결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앞서 따로 서면 메시지를 낸 것은 먼저 국민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겠다는 뜻인 듯하다. 먼저 대선 공약 불이행에 대한 지지층의 서운함을 위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문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다. 공론화위의 공론조사 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결국 공사를 재개하게 된 것이 문 대통령의 마음에 걸렸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공사중단이라는 공약을 지지해주신 국민께서도 공론화위의 권고를 존중하고 대승적으로 수용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공론화위의 숙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문 대통령의 높은 평가도 주목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이번 공론화 과정을 통해 우리 국민은 한층 성숙한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471명의 시민참여단은 작은 대한민국이었다"고 극찬했다. 또 "이번 공론화 경험을 통해 사회적 갈등 현안을 해결하는 다양한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이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유사한 사회적 갈등 조정 기구가 언제든 다시 가동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재확인한 것은 예상했던 대로다.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중단하고,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이 확인되는 대로 연장 가동 중인 월성 1호기도 중단하겠다는 것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현 정부에서 4기의 원전이 새로 가동돼 원전 수와 발전용량이 더 늘어난다고 했다. 적어도 현 정부 내에서는 탈원전으로 인해 전기공급의 안전성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원전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다음 정부부터"라면서 "다음 정부가 탈원전 기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눈길을 끈다. '다음 정부'를 거론한 것 자체가 그렇다. 동남권에 원전 해체 연구소를 세워 원전 해체에 대비하겠다는 대목에도 시선이 간다. 탈원전 기조에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원전기술의 퇴보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일 수 있다. 국내 업계의 해외 원전 해체 시장 선점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부분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렇다고 이번 공론화 결과가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할 것 같다. 당장 '원전 축소'가 공론화위 권고에 포함된 것을 놓고 뒷말이 나온다. 애초에 '원전 축소' 여부는 시민참여단의 공론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김지형 공론화위 위원장도 4차 조사 때 이 설문항목을 추가했다고 했다. 원전 축소 53.2%, 유지 35.5%, 확대 9.7%로 나온 공론조사 결과를 탈원전 지지로 해석할 수 있는지를 놓고도 의문이 제기된다. 유지와 확대를 합치면 45.2%인데 이렇게 보면 탈원전 찬반 지지율 차이는 8%포인트에 불과하다. 주 공론조사 대상이었던 5·6호기 공사 재개·중단의 오차 범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양보해도 탈원전 정책에 대해 강한 추동력을 받게 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이 높이 평가했듯이 공론화위의 숙의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잘 된 것 같다. 분출하는 사회적 갈등 현안을 조정하는 데 이런 식의 공론조사를 다시 시도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다만 공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공론화위 결정을 그대로 따르더라도 정책 결과에 대해선 정부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론조사 결과는 비중 있게 참고만 하고 정책 결정은 정부가 하는 것이 맞다. 공론조사 결과에 대한 엇갈리는 해석도 정부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번 공론조사 결과를 놓고, 탈원전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절반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탈원전 정책을 계속 추진하더라도 속도와 범위를 지혜롭게 조절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중에 되돌릴 수 없는 선은 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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