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베네치아 속한 伊북부 2개주,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
롬바르디아·베네토, 재정·치안·난민정책 등에 권한 확대 요구
법적 구속력은 없어…압도적 통과 시 중앙정부 권한 약화 신호탄 될 듯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꼽히는 북부 2개 주가 자치권 강화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나란히 시행한다.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 주와 베네치아, 베로나 등이 포함된 베네토 주는 22일 오전 7시(현지시간) 재정과 치안, 이민, 교육, 보건, 환경 등 핵심 행정에 있어 더 많은 지역 권한을 요구하는 주민투표를 일제히 시작한다.
반(反)이민, 반유럽연합(EU) 성향의 극우정당 북부동맹(LN) 소속인 로베르토 마로니 롬바르디아 주지사와 루카 자이아 베네토 주지사는 지역에서 중앙으로 흡수되는 막대한 세금만큼 중앙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대변해 이번 주민투표를 추진했다.
이 지역 주민 상당수는 중앙정부로 들어가는 자신들의 세금 중 많은 부분이 낙후된 남부를 지원하는 데 사용되는 데 반발하며,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탈리아 금융 중심지인 롬바르디아는 이탈리아 GDP에 약 20%, 중소기업이 발달한 베네토는 약 10%를 기여하는 등 이탈리아 20개 주 가운데 가장 잘 사는 지역으로 꼽힌다. 또, 두 지역 인구는 이탈리아 전체 인구의 4분에 1에 이른다.
당초 자이아 베네토 주지사는 베네토 주가 이탈리아에서 분리 독립해야 하는지, 지역에서 징수되는 세수 80%를 지방 정부의 통제 아래 둬야 하는지를 묻는 주민투표를 하려 했으나, 이런 질문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정을 받으며 이번 투표는 포괄적인 자치권 확대를 묻는 데 그치게 됐다.
이런 까닭에 이번 주민투표가 분리 독립 찬반을 물은 카탈루냐의 주민투표와는 근본적으로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주민투표가 높은 참여 속에 압도적 찬성 결과가 나오면 에밀리아 로마냐 등 이탈리아 내 다른 지역도 자치권 확대 요구에 나설 가능성이 커 잠재적으로 중앙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호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지역 정부의 자치권 확대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또 다른 우파정당 전진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당으로 인식되는 제1야당 오성운동 등도 공감하고 있는 주제다.
반면, 집권 민주당을 비롯한 반대 진영은 북부 2개 주가 사실상 중앙정부에 세금 환급을 주장하는 것은 분리 요구나 마찬가지라는 인식 아래 이번 투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법적 효력 없는 일회성 투표에 5천500만 유로라는 막대한 재원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여론조사 기관은 이번 주민투표에서 롬바르디아와 베네토 주 모두 찬성이 70%에 육박해 반대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N은 세수 분담 등의 예산 문제에 있어 중앙정부에 대한 이 지역 정부의 교섭력을 높이고, 내년 봄으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LN의 지지율을 끌어올린다는 전략 아래 주민들에게 찬성투표를 호소하고 있다.
관건은 투표율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롬바르디아 주는 최소 투표율을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베네토 주는 주민투표가 효력을 가지려면 투표율이 50%를 넘어야 한다. 마로니 롬바르디 주지사는 목표 투표율을 34%로 제시했고, 여론조사 기관 로리엔은 투표율이 높아 봤자 40%를 간신히 넘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과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은 투표가 종료되는 밤 11시 직후 나올 예정이다.
한편,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투표가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일고 있는 지역의 자치권 강화 요구 물결의 일환이라고 보도했다.
2014년 9월 부결된 스코틀랜드의 독립 찬반 투표, 작년 6월 유럽연합(EU)으로부터의 탈퇴를 결정한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지난 1일 스페인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 투표에 이어 이번 이탈리아 북부의 주민투표 역시 중앙의 막강한 통제권을 지역으로 가져오려 한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한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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