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무 때나 찾아와 책 읽고, 쉬고, 자고 가는 작은도서관

입력 2017-10-20 15:33
누구나 아무 때나 찾아와 책 읽고, 쉬고, 자고 가는 작은도서관

고창에 개인 도서관 '책이 있는 풍경' 운영하는 박영진 대표

(고창=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고즈넉한 시골인 전북 고창군 신림면에는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작은도서관'이 있다.

'책이 있는 풍경'이라는 이름의 이 도서관은 사업가이자 문학평론가인 박영진(52)씨가 만들었다.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술 한잔 하며 휴식을 취하고, 가족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다.

그래서 도서관이기도 하고, 카페이기도 하고, 펜션이기도 하다.

3천300여㎡ 부지에 편백으로 만든 한국문학관, 어린이 도서관, 황토방, 시인의 방 등 340㎡ 규모의 건물 4~5채로 구성돼있다.

4년여 전인 2012년 초 문을 열어 올해로 5년째를 맞는다.

도서관은 원래 박 씨가 개인 서재이자 쉼터로 만든 곳이다.

사업에 실패해 자살까지 고민했던 그를 바로잡아준 것이 책이었기에 '재기하면 꼭 조그마한 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다.

도서관에는 박씨가 소장한 1만여권과 주위에서 보내준 5천여권 등 모두 1만5천권의 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박씨는 "삶이 고단한 사람이 찾아와 편안히 몸과 마음을 쉬고, 한 사람이라도 책을 접하며 희망을 되찾는다면 바람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책이 없는 풍경은 상업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하루를 보내든 이틀을 지내든 간섭하지 않고, 돈 한 푼도 받지 않는다.

먹을 것만 준비해오면 혼자 밥을 해먹으며 며칠씩 묵을 수도 있다.

개인을 위해 따로 마련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도서관 한쪽에서 책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할 수도 있고, 카페식 방바닥에서 하룻밤을 뒹굴 수도 있고, 황토방에서 이름 모를 사람들과 뒤섞여 몸을 데울 수도 있다.

연간 수천만원에 달하는 관리비는 고스란히 박씨 몫이다.

이런 소문이 알음알음 나면서 '책이 있는 풍경'은 생각지도 못했던 '명물'이 됐다.



어떻게 알았는지 전북뿐만 아니라 멀리 광주와 서울 등지에서도 찾아온다.

박 대표는 "한적한 시골에서 책과 함께 느리게, 단순하게 쉬어가는 것을 지향한다"며 "이 때문인지 하나같이 '너무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책이 있는 풍경을 명물로 만든 것은 '북 콘서트'도 한몫했다.

잔잔한 통기타 가수의 공연, 문학평론가의 강연, 작가와의 대화, 성악, 클래식 연주 등이 밤을 새워 진행된다.

개관 이듬해부터 시작해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비용만도 한 번에 5천만∼6천만원이 넘게 드는 대규모 행사지만 아무런 도움 없이 온전히 박씨 혼자의 힘으로 치른다.

지금은 책이 없는 풍경의 매력에 빠져든 작가와 가수,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다행히 큰돈은 들지 않는다.



오는 21일 열리는 올해 행사에는 가수 '송민수와 강촌사람들', 소설가 김홍정, 전북대 교수인 소프라노 송금영, 목원대 인문대학장인 문학평론가 정경량, 미술강사 백선일 등이 무대에 선다.

박씨는 "초청된 분들은 우리 도서관과 북 콘서트의 취지를 이해하는 분들"이라며 "공연과 강연을 하고 오히려 관리비에 보태라며 돈을 쥐여주고 가실 정도"라고 뿌듯해했다.

박씨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누구나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남기고 싶을 뿐 더 이상의 욕심도, 목표도 없다"고 말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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