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당한 몰타 기자 자녀들 "사건 책임지고 총리 사퇴하라"
'제보자에 100만 유로 사례' 정부 제안에 "필요 없어" 냉소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지난 16일 차량에 설치된 폭탄이 터지며 폭사한 몰타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53)의 자녀들이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몰타 총리를 직접 겨냥했다.
어머니처럼 탐사보도 기자로 일하고 있는 매튜 카루아나 갈리치아는 19일 남동생 2명과 함께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조지프 무스카트 총리는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며 총리의 사퇴를 요구했다.
삼형제는 무스카트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이번 사건의 배후를 밝힐 결정적 증거를 제보하는 사람에게 100만 유로(약 13억 4천만원)를 주겠다고 제안한 것에 대해서도 "찬성할 수 없다"고 냉소했다.
이들은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조차 도움을 주지 못했던 정부와 공권력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기억하는 한 어머니를 침묵시키려 했던 사람들은 정의를 구현할 자격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어머니의 암살자들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몰타의 부패가 함께 뿌리뽑혀야 한다"며 생전 갈리치아 기자로부터 부패 당사자로 지목돼 신랄히 비판받아온 무스카트 총리의 사퇴를 거듭 요구했다.
유력 정치인을 비롯한 몰타 사회 곳곳의 부패 의혹을 가차 없이 폭로해 '1인 위키리크스'라는 평가를 받아온 갈리치아 기자는 지난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언급된 한 회사의 소유주가 무스카트 총리의 부인이라고 언급해 몰타의 조기 총선을 촉발한 인물이다.
그는 이 회사의 계좌에 아제르바이잔의 권력자 일가로부터 흘러 든 불법 리베이트가 은닉돼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그동안 무스카트 총리 측근들의 비리를 연달아 들춰 총리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갈리치아 기자의 폭로로 궁지에 몰린 무스카트 총리는 지난 6월 조기 총선을 실시했고, 최근의 경제 호황을 등에 업고 가볍게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사건으로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도 있다.
갈리치아 기자의 큰아들 매튜는 지난 17일에도 무스카트 총리를 겨냥, "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풍조를 만연하게 한 것은 바로 몰타 정부"라며 "무스카트는 우선 자신이 이끄는 내각을 사기꾼으로 꾸렸고, 그다음엔 경찰을, 이어 법원을 사기꾼과 무능력한 자들로 채우면서 몰타를 '마피아들의 섬'으로 전락시켰다"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무스카트 총리는 "국가 기관을 확고히 믿고 있고, 이를 계속해 수호할 것"이라며 야당과 유가족들로부터 나온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한편, 무스카트 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갈리치아 기자는 내 가혹한 비판자였다"고 인정하면서도 그의 죽음은 '악몽'"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갈리치아 기자가 이미 쓴 기사로 인해 암살당했는지, 아니면 앞으로 쓰려 한 기사 때문에 죽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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