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 여의도 비밀벙커 40여년만에 전시공간 변신

입력 2017-10-19 11:20
수정 2017-10-19 15:12
박정희 시대 여의도 비밀벙커 40여년만에 전시공간 변신

서울시, 여의도 벙커·경희궁 방공호·신설동 유령역 등 3곳 개방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지난 40여 년간 땅속에서 잠들어 있던 여의도 비밀벙커가 리모델링을 마치고 전시 공간으로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서울시는 1970년대 대통령 경호용으로 추정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를 전시문화공간 'SeMA 벙커'로 새로 단장해 19일 시민에게 공개했다.

이 벙커는 2005년 서울시가 버스환승센터 건립 공사를 하면서 발견한 것이다. 1970년대 만들어졌으리라 추정되지만,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다만, 1976년 11월 항공사진에는 이곳의 흔적이 없지만, 이듬해 11월 항공사진엔 벙커 출입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 공사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벙커 위치가 당시 국군의 날 사열식 때 단상이 있던 곳과 일치해 1977년 국군의 날 행사에 대통령 경호용 비밀 시설로 사용됐으리라 보고 있다"며 "냉전 시대 산물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시는 연면적 871㎡ 규모의 지하 벙커 공간을 가능한 원형 그대로 보존했다.

특히 대통령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은 소파, 화장실, 샤워장이 있는데, 소파는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시민이 직접 앉아볼 수 있게 했다. 그 외의 공간은 예술품을 설치해 전시 공간으로 꾸몄다.

시는 앞서 2015년 10월 시민을 대상으로 사전 예약을 받아 1개월간 이곳을 임시 개방한 바 있다. 당시 구체적 활용 방안을 모았더니 63%가 열린 전시문화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여의도 지하 벙커에는 시설의 두께를 가늠할 수 있는 '50㎝ 코어 조각'도 전시된다. 당시 벙커가 폭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치밀하고 틈 없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전시장 안쪽에는 발견 당시 상태로 복원한 역사 갤러리가 마련된다.

작은 타일로 이뤄진 바닥은 그대로 두고, 소방과 냉·난방 시설과 환기 시설은 새로 갖췄다. IFC몰 앞 보도에 출입구를 새로 설치했고, 보행 약자를 위해 승강기도 신설했다.

개관 기획 전시전으로는 '역사 갤러리 특별전'과 '여의도 모더니티'가 다음 달 26일까지 열린다.



한편, 시는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한구석에 있는 '경희궁 방공호'와 '신설동 유령역'도 함께 시민에게 개방한다.

경희궁 방공호는 전체 면적 1천378㎡ 규모로 10여 개의 작은 방을 갖춘 시설이다. 일제강점기 말기 비행기 공습에 대비해 통신시설을 갖춰 만든 방공호다. 외벽 두께가 약 3m에 이른다.

시는 식민지 말기 암울했던 상황과 방공호의 느낌을 되살리도록 조명과 음향 장치를 설치하고, 방공호 1층 천장에는 3D로 재현한 폭격기 영상 등을 연출했다. 또 일제강점기 관련 사진 2만여 장으로 '포토 모자이크 미디어아트'를 선보인다.

신설동 유령역은 지금은 쓰지 않는 옛 승강장으로, 운행을 마친 1호선 동묘앞행 열차의 군자차량기지 입고선으로 활용되는 장소다.

경희궁 방공호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http://www.museum.seoul.kr), 신설동 유령역은 서울시 홈페이지(http://safe.seoul.go.kr)에서 다음 달 22일 오후 6시까지 사전 예약하면 방문할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도시재생을 통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잊혔지만, 우리의 역사와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 시민에 개방됐다"며 "많은 사람이 즐겨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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