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이자람 "닮고 싶지 않았던 '송화'…이제 가까워졌죠"

입력 2017-10-18 16:56
수정 2017-10-18 17:00
'서편제' 이자람 "닮고 싶지 않았던 '송화'…이제 가까워졌죠"

2010년 초연부터 올해까지 모두 '송화' 연기한 소리꾼 이자람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소리꾼 이자람(38)은 뮤지컬 '서편제'의 2010년 초연부터 올해 8월 개막한 네 번째 시즌까지 모두 주인공 '송화' 역을 맡았다.

실제 소리꾼인 그는 무대 위에서 득음을 열망한 아버지에 의해 눈이 멀게 되는 소리꾼 송화 그 자체로 보인다.

이자람이 오랜 엇갈림 끝에 다시 만난 의붓동생 '동호'와 함께 '심청가'를 꾹꾹 눌러 토해내는 마지막 장면이 끝나면 객석에서는 먹먹한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런데 지난 17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자람은 뜻밖에도 "네 번째 무대에 서는 요즘에서야 송화와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전까지는 '나는 절대 송화랑 닮지 않았고, 닮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판소리가 그렇게 눈이 머는 아픔을 겪고, 한을 쌓아 부르는 장르도 아니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송화를 소리꾼 이전에 '삶을 버텨낸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 모든 외로움과 아픔을 모두 견디고 소리로 풀어내 기어코 '심청가'를 보여주고 말잖아요. 같은 소리꾼이라서가 아니라, 삶을 버텨낸 한 인간으로서 송화를 조금 더 가깝게 느끼고 있어요."

'애늙은이'란 별명을 달고 살아온 그가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늘 궁금해지는 부분도 비슷한 부분이다.

"제 또래나 연배가 더 있으신 분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버틸까' 궁금함을 느껴요. 외로울 때, 그만두고 싶을 때, 너무 혼자라고 느낄 때 어떻게 버티고들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요즘 많이 던져요. 그래서 그렇게 버텨준 송화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위로받는 것 같아요. 이런 이유로 관객분들도 '서편제'를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고 처음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특별히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고 말했지만, 올해 안식년을 갖고 자신만의 창작 작업에 잠시 쉼표를 찍고 있다.

브레히트의 희곡을 판소리로 탈바꿈시킨 '사천가'와 '억척가' 등으로 국악계의 한 '현상'으로까지 떠올랐던 그는 올해 '서편제' 출연과 다른 단체의 작업을 돕는 정도로만 보폭을 줄였다.

11세 때 시작한 판소리도 26년 만에 처음으로 쉬었다. 그는 이번 '서편제' 출연 전까지는 "판소리로는 입도 벙긋 안 했다"고 했다.

그는 안식년을 갖는 이유에 대해 "내 작업을 하고 싶은 욕망이 차오를 때까지 충전하고 있다"고 답했다.

"창작 욕구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까 봐, 더는 무대 위에서 놀고 싶어지지 않을까 봐 두렵죠. 가을바람이 반갑지 않거나 봄바람에 더는 설레지 않는다면 생이 흑백처럼 느껴질 것 같거든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국악계의 미래를 논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 '젊은 예인'의 꿈도 생각보다 소박했다.

"저는 송화와 많이 달라요. 예술적으로 완성된 장인이 되고 싶다는 욕심, 명창이 되고 싶다는 욕심 같은 건 없어요. 제가 스스로 바라는 건 그저 삶이 즐거워서 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정도예요. 그게 비록 빵 한 조각일지라도요. 야망이 너무 없어 보이나요? 야망은 없어도 욕망이 사라지는 건 안 되잖아요."

'서편제'는 오는 11월 5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sj99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