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조류계 조폭'…텃세 부리는 텃새

입력 2017-11-15 08:01
[연합이매진] '조류계 조폭'…텃세 부리는 텃새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한곳에 머무르며 사는 텃새의 텃세가 말이 아니다.

조류계의 조폭으로 불리는 까치와 갈매기가 텃세를 부리는 대표적인 텃새다.

철마다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에게는 텃새는 매우 귀찮은 존재다.

맹금류도 이들에게 맥을 못 춘다.

맹금류가 자신을 잡아먹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과감히 혼자서, 가끔은 떼로 몰려다니며 텃세를 부린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는 속담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는 실감이 나는 생생한 현장을 야생 세계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 맹금류도 토종 텃새에 '수난'

몸길이가 80∼94㎝에 이를 정도의 크고 육중한 맹금류인 흰꼬리수리가 토종 텃새에 수난을 겪고 있다.

강릉시 남대천을 찾아 겨울을 나는 흰꼬리수리가 토종 텃새인 까치떼에 차이고 갈매기 무리에 수시로 쫓기는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천연기념물(제243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돼 보호받는 맹금류 흰꼬리수리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남대천 일원에는 매년 흰꼬리수리 성조와 유조가 찾아와 월동한다.

그런데 인근 산에서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흰꼬리수리가 먹이 사냥에 나서 남대천 하구의 모래톱에서 잠시 쉬려고 앉으면 어디서인지 까치떼가 여지없이 나타나 머리를 발로 차고 양쪽으로 둘러싸 꼬리를 물어뜯는 등 귀찮게 한다.





영역 침범에 대한 저항에다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얻어먹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까치떼는 흰꼬리수리를 잠시도 쉬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결국 흰꼬리수리는 귀찮은 듯 자리를 털고 날아간다.

흰꼬리수리가 남대천에서 물고기 사냥을 위해 비행을 하면 또 다른 텃새 갈매기가 악다구니를 쓰며 쫓아다닌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흰꼬리수리를 끝까지 쫓아다니며 귀찮게 해 먹이 사냥을 방해하고 몰아내고 만다.

갈매기는 앉아 쉬는 흰꼬리수리를 날아가면서 걷어차며 위협하거나 아예 겁 없이 올라타기도 한다.



가끔은 까마귀도 찾아와 맞짱을 뜨는 포즈로 귀찮게 한다.

날개를 펴면 엄청난 크기에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 등 위용을 한껏 자랑하는 조류계 최상위의 맹금류지만 이들에 맞서지 않고 대부분 피하기 일쑤다.

연어와 숭어, 짐승인 산토끼와 쥐, 조류인 오리·물떼새·도요새·까마귀 등을 주식으로 삼는 것을 고려하면 텃새의 텃세에 흰꼬리수리의 겨울나기는 힘겹기만 하다.

◇ 텃세 이겨내야 먹고 산다

타고난 물고기 사냥꾼인 물수리도 갈매기의 심한 텃세를 이겨내야만 먹이를 먹을 수 있다.

물수리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이자 국제지정 보호종이다.

뛰어난 시력, 날카로운 발톱을 자랑하는 매목 수리과의 맹금류다.

그러나 조류계의 조폭인 갈매기는 맹금류 물수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물수리가 나타나면 앉아 쉬다가 겁을 먹고 날아오르며 피하는 자세를 취하지만 물수리가 숭어, 잉어, 붕어 등 물고기 사냥에 성공하면 끝까지 뒤쫓으며 먹이를 빼앗으려 못살게 군다.

물수리가 사냥에 성공해 날아가면 물고기 무게 때문에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을 노린 것이다.

어떤 갈매기는 물수리가 잡은 물고기를 빼앗으려 겁 없이 물고기에 부리를 갖다 대기도 한다.

가끔은 갈매기의 끈질긴 괴롭힘에 물수리는 날카로운 발톱에 매달려 있던 물고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갈매기의 집요한 텃세를 이겨내야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발끈한 까치, 말똥가리와 눈싸움

늦가을이 되면 우리나라를 찾는 맹금류 말똥가리도 까치와 앙숙이다.

몸길이가 수컷 52cm, 암컷 72cm, 날개도 122~137cm에 이르는 거대 몸집이다.

멸종위기등급으로 비교적 귀한 몸이다.

산 아래 주택가 전봇대가 말똥가리의 전용석이다.

추수가 끝난 논밭이 잘 보이는 전봇대에 앉아 쉬면서 주로 쥐를 노린다.

그런데 자기 영역을 침범한 데 발끈한 까치가 날아와 말똥가리와 눈싸움을 한다.

말똥가리는 전봇대에서, 까치는 전깃줄에서 서로를 노려본다.

그러다 혼자는 안 되겠는지 까치는 동료 몇 마리를 데리고 와 대범하게 공격을 하는 등 맞짱을 뜬다.

귀찮은지, 무서운지 말똥가리는 전봇대 전용석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 청둥오리에 텃세 부리는 갈매기

경포호의 터줏대감인 갈매기는 청둥오리에 텃세를 부린다.

청둥오리가 물속에서 작은 물고기 등 먹이를 사냥하면 공중에서 선회하던 갈매기가 먹이를 빼앗고자 공격한다.

갈매기 사냥법 중 하나가 남의 먹이를 빼앗아 먹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갈매기의 추적은 매우 집요하다.

청둥오리는 쫓기면서도 먹이를 지키려 애를 쓰지만 거의 떨어뜨리고 만다.

갈매기가 다른 청둥오리에 관심을 가질 때 사냥해야만 사냥한 먹이를 먹을 수 있다.

그것도 재빨리 먹어야 한다.



갈매기의 텃세는 물고기 사냥꾼 비오리도 봐주지 않는다.

비오리가 무리를 지어 잠영하다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아 수면으로 올라오면 갈매기가 정지비행을 하며 기다린다.

모든 상황을 위에서 지켜본 갈매기는 물고기를 빼앗기 위해 공격한다.

날쌘 비오리도 발이 보이 않을 빛의 속도로 물을 튀기며 재빨리 도망간다.

비오리는 청둥오리와 달리 도망가면서도 먹이를 삼킬 수 있어 그나마 사냥한 먹이를 지키는 비율이 훨씬 높다.

그럴수록 갈매기는 집요해진다.

아주 멀리서 날아와 계절을 보내야 하는 철새는 텃새의 텃세에 눌려 먹고 살기가 팍팍하다.

그럴수록 생태계는 생동감 넘치고 활기찬 모습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yoo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