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불인증은 북한 겨냥…'자충수' 지적도

입력 2017-10-16 10:35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불인증은 북한 겨냥…'자충수' 지적도

틸러슨 "북한은 미국이 매우 까다로운 합의 기대한다는 것 배워야"

헤일리 "나쁜 합의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는 것"

완벽한 비핵화 압박 의도…"미국 신뢰 떨어뜨려 협상 어렵게할 수도"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이란의 핵합의 준수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인증' 선언은 결국 북한을 겨냥한 초강수라는 사실을 미 정부가 공개 인정했다.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법을 추구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엉터리 합의는 해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경고성 메시지인 셈이지만, 오히려 미국의 손발을 묶은 자충수라는 비판도 곳곳에서 나온다.

이란 핵합의 논란을 북한 문제와 연결시키는 발언은 15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 최고위 외교라인의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쏟아져 나왔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CNN 방송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에 출연해 "북한이 이 결정(이란 핵합의 불인증)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미국이 북한과 매우 까다로운 합의를 기대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은 "그 합의는 매우 구속력 있고, 단지 미국의 목표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그 지역 다른 이웃 나라들의 정책 목표인 비핵화된 한반도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NBC·ABC 방송과 잇따라 인터뷰를 하고 "우리가 이란 핵협정을 검토하는 모든 이유는 북한 때문"이라면서 "이는 우리가 앞으로 나쁜 합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완벽한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헤일리 대사는 "우리가 합의했다고 해서 눈감아주는 일은 없을 것이고, 우리는 그 합의를 계속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메시지는 대북 군사행동을 경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협상의 여지도 열어놓은 가운데 나왔다.

'폭퐁 전의 고요' 등의 발언으로 충돌 위기감을 높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이란 핵합의 준수에 대한 불인증을 선언한 뒤 기자들과 만나 "(북한과) 협상을 해서 뭔가 일어날 수 있다면 나는 언제나 그것에 열려있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도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나에게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대북 협상론에 무게를 실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문제를 북한과 결부시킨 것은 협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결코 이란처럼 만만한 합의를 해주지 않겠다고 미리 선을 긋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즉, 이란 핵합의처럼 핵물질과 생산시설을 완전히 없애지 않아 다시 핵개발을 할 여지를 남겨놓은 '가역적' 합의가 아니라 북한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만이 협상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여러 차례 공개 석상에서 북핵 문제를 가리켜 "25년 전에 해결됐어야 했다"며 과거 북핵 동결에 합의해줬던 전임 정권을 비판한 것도 이와 같은 가이드라인을 암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1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클린턴(전 대통령)은 그들에게 수십억 달러를 줬지만 그들은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미사일과 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지난달 25일 강연에서 "미국이 북한 정권과 협상하기 전, 북한은 핵시설 사찰을 받아들이고 핵무기를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파기 위협은 결국 미국 정부의 신뢰성을 떨어뜨려 북한과의 외교적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잡지 뉴요커는 이란 핵합의 불인증이 미국의 신뢰를 떨어뜨렸으며, 이는 북한 내 '대화파'의 입지를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마이클 매든 존스홉킨스스쿨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매파가 외교적 해법을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특히 미국의 신뢰도 하락이 미국의 편에 설지를 신중히 저울질하는 중국과의 균열을 일으켜 북핵 협상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을 것으로 이 잡지는 내다봤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무력화는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희망을 내동댕이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의회가 이란에 대한 초강경 입법을 강행할 경우 이란이 '핵합의 파기→핵개발 가속화'의 수순을 밟고, 이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도 제기됐다.

뉴요커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 이란이라는 2개 전선에서 전쟁을 수행할 가능성을 자초하는 일이자 '자해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국가이익연구소(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연구원은 폭스뉴스 기고문에서 "미국이 이란과 대결하는 것은 북한의 이익으로 작용할 뿐"이라면서 "독재자 김정은은 평양 어디에선가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결국 이 나라는 몇년 뒤 핵보유국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북한은 과거 긴장 상황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사일과 핵 시험에서 물러서고, 이란이 트럼프로부터 모든 화염과 분노를 감당하는 사이 실험실에서 핵무기 기술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firstcir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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