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총선 극우세력 부상은 나치 청산 미흡 때문

입력 2017-10-16 10:37
오스트리아 총선 극우세력 부상은 나치 청산 미흡 때문

"자유당 부상 놀랍지 않아." <텔레그래프>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오스트리아에서 극우정당이 2위로 부상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스트리아는 자신들의 나치 과거를 전혀 속죄한 적이 없다.".

극우세력의 정부 참여를 가까스로 모면한 인접 독일과 달리 오스트리아에서 이런 총선결과에 따라 극우세력이 우파인 국민당과 연정을 꾸릴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5일 2차 대전 이후 인접 독일과 달리 국가적 차원에서 나치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을 극우세력 부상의 배경으로 지적했다.

극우세력의 부상을 가져온 난민 등의 이슈가 있었지만 보다 오스트리아의 '문제'는 탈(脫)나치화가 이뤄지지 못한 보다 근본적인 배경이 있다는 분석이다.

모차르트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나라로 그동안 비교적 유럽 정치 무대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오스트리아가 극우세력의 집권이 현실화한 이번 총선을 계기로 유럽연합(EU) 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EU 단합이라는 측면에서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텔레그래프는 근래 유럽 수개국에서 극우 대중정당들이 예기치 않게 선거를 통해 부상한 적이 있지만, 오스트리아 극우 자유당의 부상은 그동안 오스트리아 정치를 주시해온 사람들에게는 이변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오스트리아 유권자들의 극우 선회가 단지 최근의 현상이라거나 난민 위기 때문만은 아니라면서 2015년 이후의 난민 위기가 자유당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 것은 분명하지만, 오스트리아의 극우세력에 대한 '애정'은 훨씬 이전부터 깊숙이 자리 잡아왔다고 지적했다.

자유당은 이미 1983년과 2000년 사민당과의 연정에 참여한 바 있으며 당시 이스라엘의 반발과 EU의 경제제재를 초래한 바 있다.

1945년 5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패망해 연합국에 항복할 당시 오스트리아에는 이미 반(反) 파시스트 정부가 들어서 있었다. 따라서 2차 대전의 책임은 모두 나치 독일에 돌아갔으며 오늘날 '나치'에 대한 죄책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극우 민족주의 정당들과 연계된 역사적 오점들도 오스트리아에서는 거의 정치적 이슈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

나치 정부 관리이자 친위대 장교였던 안톤 라인탈러에 의해 창립된 자유당은 5

% 지지율에 머물러왔으나 1980년대 지도자 외르크 하이더가 당을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변화하면서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하이더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소외 그룹에 당의 문호를 개방하면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 2000년에는 국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기도 했으나 뒤이은 내부 분쟁과 하이더의 사망으로 다시 세력이 위축됐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난민 문제와 사회적 지위를 상실할 것을 우려한 일부 계층의 공포감이 역사적으로 잠재된 외국인 혐오증과 결부되면서 자유당의 부활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고 있다.

아울러 사민당 등 전통적 중도정당들이 자유당의 약진에 따른 유파 유권자층을 의식해 이념적으로 우향하고 있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최근 오스트리아 관광산업의 호황이 자국민들이 기피하는 직종을 대신 맡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존하고 있음을 들어 오스트리아의 외국인 혐오증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자유당의 연정 참여가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총리로 유력시되는 국민당의 제바스티안 쿠르츠(31)가 국정을 장악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내면서 오스트리아의 이번 총선은 (오스트리아의)관용과 진보적 이미지에 대한 종언일 뿐 아니라 EU 단합 비전에 대한 잠정적 고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yj378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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