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신성일 "난 딴따라 아니다…영화인으로서 자부심"

입력 2017-10-15 13:47
수정 2017-10-15 15:45
[부산영화제] 신성일 "난 딴따라 아니다…영화인으로서 자부심"



(부산=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나는 '딴따라'가 아닙니다. 딴따라는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딴따라는 옛날에 악극단이 공연할 때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따따따' 나팔을 불며 호객을 하던 것에서 나온 말이에요. 저는 종합예술 속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스타' 배우 신성일(80)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1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영화 한편 한편에 얽힌 추억과 에피소드, 당시 시대적 상황, 부산영화제와의 인연 등을 마치 어제 일인 양 풀어냈다.

넉 달 전 폐암 3기 진단을 받았지만, 한 시간 동안 서서 열정적으로 말을 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의사가 기적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치료를 안 해도 될 정도라고 해서 7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고 끝내는 것으로 했습니다. 모두 기초체력이 좋은 덕분인 것 같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을, 6학년 때는 평행봉을 했다. 고등학교는 유도 낙법을 배웠고, 수영은 바닷가에 살아서 어렸을 때부터 했다"면서 "스포츠로 단련돼 못 하는 것이 없다"며 웃었다.



신성일은 한국영화 역사의 산증인이다. '맨발의 청춘'(1964)에서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로 스타로 떠오른 그는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위험한 청춘'(1966), '불타는 청춘'(1966) 등 5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1950∼60년대 신성일의 인기는 미국의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 들롱과 비견됐을 정도다.

신성일은 올해 부산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이다. "제 나이 팔십이 됐고, 데뷔한 지 60년 가까이 됐으니 이만하면 회고전을 열 시기는 딱 맞다고 생각합니다."

회고전에는 '맨발의 청춘'(1964)을 비롯해 '초우'(1966), '휴일'(1968), '별들의 고향'(1974), '길소뜸'(1985) 등 8편이 선보였다.

신성일은 그의 출연작 중 이만희 감독의 '만추'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1966년 대양영화사가 제작한 작품으로, 기차 안에서 만난 모범 여죄수와 한 청년의 짧은 사랑을 그린다. 이 영화의 필름은 현재 한국에 남아있지 않다.

"'만추'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상작품입니다. 주인공도 매력이 있죠. 제가 출연했지만, 신성일이라는 사람이 매력이 있습니다. 또 문정숙 씨가 아주 무르익은 여인으로 나오죠. 눈만 봐도 갈구하는 눈빛이었습니다. 당시 문정숙 씨가 이만희 감독과 연애할 때였죠."

신성일은 "과거 최은희·신상옥 감독 부부가 북한에서 탈출해 미국 CIA의 보호를 받으며 미국에서 살 때 만난 적이 있다"며 "당시 두 사람이 '만추'가 북한 김정일의 개인 필름 라이브러리 인덱스에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빌려와서라도 이만희 감독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 '휴일'(1968)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휴일'은 제작자가 전옥숙이고 영화사 대표가 홍의선으로, 두 분의 아들이 홍상수 감독"이라며 "내가 홍상수 엄마를 이모라고 불렀다. 저희 어머니와 홍상수 어머니가 자매지간처럼 지냈다"고 떠올렸다.

신성일은 5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지만, 주요 출연작을 연도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전두환 정권 때 영화계가 말살됐죠. 그 당시 할 일이 없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내 (영화) 족보를 공부했습니다. 저는 52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그중 15편 정도는 카메오로 나왔죠."







신성일은 "나는 원래 솔직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손해도 많이 봤다"면서 민감한 이야기도 진솔하게 들려줬다. 정관계에 얽힌 그의 경북고 동문 인맥부터,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와 관련해 광고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옥고를 치른 이야기도 털어놨다.

팔순의 신성일은 현재 제2의 삶을 준비 중이다. "저는 향후 삶에 대한 설계가 다 돼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묻힐 장소까지 만들어놨죠. 내년에는 영화 '행복'이라는 작품을 기획 중입니다. 요즘은 드라마도 막장이고, 영화는 만날 복수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때리고 죽이고, 사회 고발 영화인데도 잔인하게 복수해서 살벌합니다. 그래서 저는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내후년에는 김홍신의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영화로 옮길 계획이다. 영화 외적인 일도 준비 중이다. 경북 영천에 한옥을 지어 사는 신성일은 그곳에 진입로와 카페, 오픈 스튜디오를 만들어 일 년에 한 번씩 소규모 음악회를 여는 등 사람들의 쉼터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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