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집단지도체제 무너지나…흔들리는 내부 권력규칙
덩샤오핑 설계 격대후계제도 사실상 파기…'7상8하'에 촉각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체제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1인 권력 강화 과정에서 조금씩 와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과도한 권력집중을 경계해 덩샤오핑(鄧小平)이 지난 30년간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고심해 구축해놓았던 중국 정가의 불문율도 시진핑 집권 5년 사이에 연이어 타파되고 있다.
마오쩌둥 1인 독재 시대에 후계자들이 연이어 '폐출'되는 것을 목격했던 덩샤오핑은 자신이 수립한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 두 후계자도 폐출한 다음 장쩌민(江澤民)을 내세워야 했다.
결국 일당 통치체제의 중국 공산당이 인치(人治)의 한계에서 벗어나도록 권력행사와 승계 문제에서 집단지도체제와 격대(隔代) 후계지정이라는 불문율을 도입했다.
먼저 집단지도체제는 총서기의 독단을 허용하지 않고 중대 결의사안은 정치국 상무위원회 공동으로 결정토록 한 것이다.
즉 7명, 또는 9명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공동 지도부를 구성하고 이들이 중대사안을 결정할 때 1인 1표제를 채택하도록 했다. 서열 1위의 총서기의 표나 나머지 상무위원들의 표는 모두 등가였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7명, 또는 9명의 홀수로 설계한 이유도 다수결로 결정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 상무위원마다 한 분야를 담당하고 각자의 한계를 분명히 해 상대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했다.
당 총서기가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하는 것 외에 국무원 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주석,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당 중앙정법위원회 서기, 이데올로기 담당자 등으로 직무를 분담시켰다.
이런 직무 분담모델은 '구룡(九龍)의 치수(治水)'로 불렸다.
격대 후계지정 제도는 특정 정치세력이 오랜 기간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직 권력자 입맛대로 차기 후계자를 바꿀 수 없도록 차차기 후계자만을 지명토록 한 것이다.
총서기와 총리 후보를 한 세트로 2인을 5년전에 미리 지명해 중앙정치국에서 예비 지도자 수업을 받도록 설계했다. 이 역시 권력집중을 경계한 덩샤오핑의 심모원려(深謀遠慮)였다.
이에 따라 덩샤오핑은 장쩌민을 후계자로, 후진타오(胡錦濤)를 그 다음 후계자로 지명했다. 결국 장쩌민도 퇴진하면서 후임자로 후진타오를 받아들이되 격대 후계자만을 지목하는데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모델은 권력이 독재화할 위험은 피하게 만들었으나 부작용도 낳았다. 독립적 권력을 행사하게 된 정치보스가 오랜 기간 한 분야를 장악하고 조직을 비대화해 파벌을 형성하는 문제였다.
수감된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중국석유(CNPC) 회장, 쓰촨성 당서기, 공안부장, 중앙정법위 서기 등을 차례로 지내는 동안 부패 연결고리가 되는 4대 파벌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시 주석은 이에 따라 집권후 정법위 서기 자리를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격하시키는 것으로 집단지도체제 해체를 시작했다. 인사와 권한 조정을 통해 100만 무장경찰과 전국 공안·검찰·법원 조직도 중앙지도부 휘하로 귀속시켰다.
시 주석은 또 당내에 각종 소조, 위원회를 나눠 설치해 조장, 주임, 주석, 총지휘를 겸하는 방식으로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의 직무를 침탈하기 시작했다.
중앙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 조장의 직함으로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경제 총괄권을 잠식하고 국가안전위원회 주석 직함으로 안보 개념을 확대해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의 직권을 건드렸다.
현재 19차 당대회에서 마오쩌둥 시대의 당 주석제가 부활할 것이라는 관측도 집단지도체제의 와해와 관련이 있다. 상무위원회 결정에 대한 거부권이 주어지는 당 주석에 시 주석이 앉게 되면 이를 기반으로 10년 임기를 연장해 장기집권할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시 주석은 또 덩샤오핑이 확립한 격대 후계지정 내규도 사실상 파기했다.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시 서기를 부패 명목으로 낙마시키면서다.
시 주석 후임의 지정권은 후진타오 전 주석이 갖고 있기 때문에 류링허우(60後·1960년 이후 출생자) 정치국원이었던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서기와 쑨정차이 전 서기가 차기 후계자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했다.
후춘화는 후진타오가 공청단파 색채가 선명한 인물이었고 쑨정차이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후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년간 후춘화 쑨정차이 두 후계자 후보는 전전긍긍했다.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수시로 '시진핑 핵심'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는 게 이들의 일과였다.
19차 당대회에서 남은 후계자 후보 후춘화가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해 중앙요직을 맡게 될지, 시 주석이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후춘화에게 순순히 총서기 자리를 물려줄지는 앞으로도 계속 주시해야 될 대목이다.
시 주석이 후춘화에게 자리를 넘기려는 뜻이 없다면 심복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서기를 쑨정차이 낙마로 공석이 된 후계자 후보에 채워넣거나 후춘화의 앞 서열에 배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또다른 가능성은 시 주석이 공산당 주석제 도입 등을 통해 자신의 집권 기간을 연장하려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당 총서기가 10년 동안 2개 임기를 재직하도록 한 덩샤오핑의 권력설계안에 도전하는 것이다.
권력집중 견제를 위한 룰이 장쩌민 집권기에는 정적을 밀어내기 위한 '70세 정년'과 '7상8하(七上八下·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라는 내규로 발전했다. 두 규칙은 사실 임시변통의 성격이 강한 계책이었지만 장기집권의 폐해를 막고 권력승계 구도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효과를 낳았다.
'70세 정년'은 상무위원이 70세를 넘겨 연임할 수 없게 한 내규다. 1997년 15차 당대회에서 장쩌민이 경쟁자로 여기며 당내 지지도가 높았던 차오스(喬石) 당시 전인대 위원장에게 이 규칙을 내세워 퇴임하게 만들었다.
7상8하는 2002년 16차 당대회 당시 리루이환(李瑞環) 정협 주석을 겨냥한 것이었다. 완전 퇴임을 앞둔 장쩌민은 지속적인 국정 및 인사장악을 위해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리루이환에게 7상8하 원칙을 내밀어 당시 68세의 리루이환을 하차시켰다.
시 주석은 장쩌민이 세운 이 두 내규도 당내 확정된 원칙이 아니라며 유명무실하게 만들 가능성이 점쳐진다. 특히 7상8하 내규 파기 여부는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의 거취에서 나아가 시 주석의 집권연장 포석으로 의심받는 대목이다.
싱가포르국립대의 중국 전문가 정융녠(鄭永年) 교수는 "왕치산을 유임시켜도 의외의 일이 아닌 것이 7상8하는 비공식 제도로 리루이환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두사람 밖에 적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나이로 지도자 자격을 제한하다보니 중국 최고지도자 자리는 인구의 절반에게 배제되는 기이한 결과가 초래됐다.
총서기와 총리 10년 임기를 끝자리가 7의 해인 중간 당대회에서 연임하기 위해서는 후계자로 지목될 당시 연령이 반드시 58∼62세여야 한다. 58세보다 어리면 두차례 임기후 퇴임 연령에 이르지 않고, 62세보다 높으면 연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국 최고지도자는 1940∼1944년 태생의 후진타오(1942년생), 1950∼1954년 사이의 시진핑(1953년생), 1960∼1964년 출생의 후춘화(1963년생)처럼 끝자리가 0∼4로 끝나는 해의 출생자로 제한되게 됐다. 출생연도가 5∼9로 끝나는 해의 출생자에게 아예 최고지도자가 될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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