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분양제 도입] '약일까 독일까'…건설사는 자금마련 '비상'

입력 2017-10-15 09:21
수정 2017-10-15 20:42
[후분양제 도입] '약일까 독일까'…건설사는 자금마련 '비상'

후분양하면 아파트 직접 보고 구입 가능…과열·투기차단 효과

업계, 자금력 없는 중소업체 불리…분양가 상승·공급 축소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정부가 주택의 전체 공정이 80%에 도달한 이후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는 '후분양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민간 건설사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역대 초강력 규제책으로 꼽히는 정부의 8·2 대책 이후 주택시장 전망이 불투명해진 데다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 규제 부활이 임박한 가운데 민간주택에 후분양제까지 본격적으로 도입될 경우 앞으로 주택사업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공공부문의 후분양제는 로드맵을 만들어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민간 주택에 대해서는 건설사들이 자발적으로 후분양을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구상 중이다.

당장 민간주택에 대한 후분양을 의무화하지는 않는 대신 인센티브를 확대해 참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 '깜깜이 분양' 막고 투기 차단 vs 분양가 상승·공급축소 우려

후분양제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먼저 주택 수요자 입장에서는 아파트가 어느 정도 완공이 된 상태에서 분양을 신청하기 때문에 최소한 건물 외관 등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집을 구입할 수 있다.

부실시공을 예방하고 소비자의 선택권도 보장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견본주택이 아닌 실제 아파트 단지의 층, 향, 구조 등을 확인하고 분양받으므로 '깜깜이 분양'도 피하게 된다.

주택 시장 차원에서도 청약과열이나 분양권 전매를 통한 투기를 차단할 수 있고, 주택 수급 불균형에 따른 혼란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후분양제를 도입할 경우 우려되는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건설사들은 완공 때까지 계약금이나 중도금 등을 받을 수 없어 건설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건설자금 조달을 위한 금융비용 등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간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돼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조합 등 시행사로서는 공사비를 모두 자체 조달해야 하므로 금융비용이 많이 늘어나 사업성이 악화된다고 판단해 사업을 미룰 수 있다. 이런 경우가 늘면 주택 신규 공급물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소비자들로서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 형태로 집값을 2~3년간 나눠내던 선분양제와 달리 후분양제에서는 계약부터 입주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내에 한꺼번에 수억 원의 목돈을 마련해야 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부동산 전문가는 "주택 대출받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후분양제를 하면 개인의 신용 상태에 따라 대출 가능 금액이나 금리가 크게 차이가 날 것"이라며 "현재는 건설사의 신용으로 분양가의 40∼60%에 이르는 중도금 대출을 연 2∼3%대의 저리로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 개인이 직접 대출을 받으면 이보다 높은 금리가 적용돼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의 관계자는 "후분양을 한다 해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최근 문제가 되는 부실시공 여부를 눈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준공후 후분양이 아니라면 마감 수준을 보고 결정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 주택 의존도 높은 중소 건설사, 자금력 없어 불리

건설업계에서는 민간 아파트로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건설사의 재무 능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선분양제에서는 건설사나 재건축 조합 등의 시행사가 일반 분양자의 계약금, 중도금을 통해 공사비를 조달할 수 있었지만,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공사비를 나중에 받아야 하므로 시행사가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신용도가 높은 대형 건설사는 아파트 사업이 가능하지만 자금조달 능력이 부족한 중견 건설사들은 사업 추진이 어려워진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는 사업 초반에 분양대금이 없어도 공사비 조달에 어려움이 없겠지만 중견 건설사는 막대한 공사비를 조달할 곳이 없어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중견 건설사일수록 주택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워크아웃에 있거나 경영상황이 악화한 건설사들은 좋은 사업을 따내기 힘들어져 재무구조 개선이 더 힘들어지고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건축·재개발 사업 수주전에서 '대기업 독식'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좋은 대형 건설사들 역시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신규 사업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긴 마찬가지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후분양을 하면 분양성을 미리 살펴볼 수도 없고 공사비, 사업비를 자체적으로 모두 조달해야 해 건설사 입장에선 신규 사업을 하기 쉽지 않아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주택공급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건설단체의 관계자는 "후분양제 도입 이후 몇 년간은 공급물량이 확 줄면서 집값이 단기적으로 상승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한동안 주택 시장 공급이 전반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의 주택금융 환경에서 후분양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며 "주택금융시스템의 구조적 개편 등이 선행된 뒤 점진적으로 후분양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업계 전반적으로 후분양제를 꺼리는 분위기지만 한편에선 강남 재건축 단지 수주 경쟁에 나선 일부 건설사들이 '후분양제 수용'을 사업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추진하지 공사가 끝나가는 시점에 정부 제재를 받지 않고 분양가를 높게 책정해 '제값을 받겠다'는 조합의 의도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강남 재건축 단지조차도 실제로 조합과 건설사가 후분양을 채택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후분양을 하려면 건설사의 자금력이 뒷받침돼야 할 뿐만 아니라, 공동사업시행 등 사업 조건에 따라 후분양에 따른 이자 비용을 조합 사업비로 충당해야 하는 경우 조합원의 수익이 감소해 추가부담금이 늘어나는 등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yjkim8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