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꿈나무로 자라난 태국의 '대장금 키즈'들

입력 2017-10-15 09:00
한국어 꿈나무로 자라난 태국의 '대장금 키즈'들

드라마 이어 K-팝 인기에 한국어반 경쟁률 4대 1

한 주에 10시간 한국어 집중수업…"한국 대학·기업 가고 싶어"

(방콕=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태국에서 엄청나게 인기 있었어요. 지금은 엑소, 워너원 팬이 많아요."

방콕에서 차로 30분가량 달리면 나오는 싸라위따야학교.

중·고교생 3천700명이 공부하는 이 학교는 한국의 고1에 해당하는 4학년 학생부터 외국어와 수학·과학 등 전공을 나눠 수업한다.

학년별로 12개의 전공반 가운데 한 반은 한국어반이다.

한국어반에서는 문법과 말하기·듣기·문화 등 일주일에 10시간씩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공부하는 5학년(고2) 학생들은 대부분 어릴 적 드라마 대장금 덕분에 자연스럽게 한류를 접한 '대장금 키즈'들이다.

드라마와 노래를 통해 한류가 확산하면서 한국어의 인기도 높아져 올해 한국어반 입학 경쟁률은 4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한국인이라도 대중문화에 별 관심이 없다면 잘 모를 법한 아이돌 가수들의 이름을 줄줄 읊어댔다. 영락없는 한국 소녀팬들의 표정이었다.

5학년인 라다는 또박또박 한국말로 말했다.

"어릴 때 태국에서 대장금이 인기가 정말 많았어요. 저는 갓세븐과 이종석을 좋아해요."

비교적 최근에 방송된 드라마 '닥터스'나 '도깨비'를 재미있게 봤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한국어가 배우기 쉬운 언어는 아닌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일·이·삼·사, 하나·둘·셋·넷 등 숫자를 세는 방법이 어렵기도 하고, 앞 단어에 따라 달라지는 '-과', '-와', '-은', '-는' 등 조사의 쓰임이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덕분에 2년간 배운 한국어 실력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말을 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늘었다.

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수니싸 씨는 한국·태국 정부가 추진한 한국어 교원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연수를 받고 태국으로 돌아와 교사가 됐다.

자신도 대장금을 통해 한국에 관심을 두게 됐다는 수니싸 씨는 "문법은 태국어로 설명을 자세히 해줘야 해서 제가 수업하고, 문화 시간에는 한국인 선생님이 수업하는데 학생들은 확실히 문화 수업을 더 좋아한다"며 웃었다.

한국어반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한국과 관련된 진로를 택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더 공부하거나 한국과 관련된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것이다.

5학년인 메씨야는 "한국 대학에 가고 싶다. 외대나 이화여대에 가면 좋을 것 같다"며 "대학에 가서도 계속 공부해서 한국에서 태국 여행객을 위한 관광가이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 대학이 더 적극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어 전공반을 총괄하는 핌쁘라파 쁘라툼완 부장교사는 "장학금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어느 학교에 진학할지,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한국에서 진행하는 단기 캠프나 연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국 한국교육원 윤소영 원장은 "한류의 인기가 주춤하더라도 한국어 교육이 계속 이루어질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며 "외국 교과서에 동해·독도에 대한 설명을 넣는 것만큼,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 학생들이 한국을 깊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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