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성자' 하안토니오 신부, 숙환으로 선종
50여년 동안 국내서 가난한 자·세계평화 위해 헌신
(부산=연합뉴스) 박창수 기자 = 운동선수를 꿈꾸던 36세의 한 젊은 유러피언은 1958년 7월 5일 일본에서 화물선을 타고 한국땅을 밟았다.
그는 화물선에 가득 실린 비료를 보며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한반도에서 비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4년간 포로로 생활한 경험이 있던 그는 북한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돌아온 독일인 신부로부터 한반도의 실정을 전해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독일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지 3개월 만이었다.
부산 판자촌에 정착한 그는 결심대로 평생을 빈민구제와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개인 재산을 털어 밀가루와 옷을 사들여 피난민에게 나눠주고 전쟁고아를 돌보고 가르쳤다.
가난한 학생의 자립을 위해 1965년 기술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학원은 한독여자실업학교의 모태가 됐고, 지금은 부산문화여자고등학교로 남아 있다.
1977년 그가 세운 조산원은 인근에 병원이 들어서면서 1992년 폐업했지만 신생아 2만6천여명의 요람이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가톨릭교회의 명예 고위 성직자((Prelate of Honour)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부산 동항성당 주임 신부로 있던 1964년 그는 가톨릭교회 국제단체인 '파티마의 세계사도직'(푸른 군대) 한국 본부를 창설했다.
2015년 임진각에서 불과 1.2㎞ 떨어진 곳에 남북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는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완공하고 세계 평화와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한 미사를 매년 봉헌해 왔다.
당시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강력한 무기와 막대한 군사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에 의한 정신적인 무장이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우리 성당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 국민추천 포상 수상자로 선정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의 바람처럼 비료 같은 삶은 살아온 하안토니오(안톤 트라우너) 신부가 14일 새벽 숙환으로 선종했다.
이날은 그가 독일 남부 베르팅겐에서 태어난 지 정확하게 95년째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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