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리잔수 실세 발탁설 무성…시진핑 '왼팔'에서 '오른팔'로

입력 2017-10-12 11:30
中리잔수 실세 발탁설 무성…시진핑 '왼팔'에서 '오른팔'로

혁명 가족 출신…시진핑과 이웃 현서기 30여년 인연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시진핑(習近平) 집권 2기에 시 주석의 비서실장격인 리잔수(栗戰書) 중앙판공청 주임이 새로운 실세로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8월 67세가 되는 리잔수는 고령임에도 오는 18일 개막하는 제19차 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로 꼽힌다.

리 주임은 말단 지방조직을 시작으로 시안시, 2개 성 서기를 차례로 거친 뒤 중앙에 진출, 현재 정치국 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판공청 주임을 겸하고 있어 상무위원 진입은 떼 놓은 당상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히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퇴임하게 되면 리 주임이 그 후임에 앉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도 12일 리 주임이 향후 5년간 반부패 사정, 기강 확립의 임무를 맡게 될 것으로 보도했다.

오랜 기간 시 주석과 인연을 이어온 리 주임은 왕치산의 뒤를 이어 시진핑의 '오른팔'이자 '심복'이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허베이(河北) 핑산(平山)현 출신의 리잔수는 항전 기간 모두 27명의 일가가 전쟁, 혁명에 참가한 혁명원로 가족 출신이다. 핑산현 혁명지도자였던 리짜이원(栗再溫) 전 산둥성 부성장(문혁기간 사망)을 작은할아버지, 국공내전 기간에 숨진 리정퉁(栗政通)을 숙부로 두고 있다.

그는 22세인 1972년 12월 허베이 스자좡(石家莊) 상업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주경야독으로 부족한 학업을 보충했다. 허베이사범대 야간대학, 중앙당교, 사회과학원 등을 전전하다가 하얼빈공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고향인 허베이성에서 줄곧 일하다가 1998년에야 타향인 산시(陝西)성 부서기 및 시안(西安)시 서기를 맡게 됐다. 2003년 리잔수는 헤이룽장(黑龍江)성 부서기로 옮겼다가 2010년 구이저우(貴州)성 서기로 승진 이동했다.

시 주석이 권좌에 오른 2012년 62세의 리잔수는 시 주석의 발탁으로 중국 공산당 총서기 비서실인 중앙판공청으로 이동했다. 같은 해 9월 중앙통전부 부장으로 이동한 링지화(令計劃) 후임으로 중앙판공청 주임에 오르면서 일약 '중난하이(中南海)의 총지배인'이 됐다.

리잔수가 시 주석의 신임을 얻게 된 것은 세가지 사유가 꼽힌다.

먼저 리잔수가 1983∼1985년 스좌장지구 우지(無極)현 서기를 지낼 당시 시 주석은 바로 맞붙어 있는 정딩(正定)현 서기를 지내고 있었다. 리잔수의 나이가 세살 많았지만 이념적 성향이 맞았던 이들은 의기 투합해 항시 술을 마시며 우의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잔수가 시 주석의 고향인 산시성에 부임해 갔을 당시에도 시 주석은 리 주임이 능력과 청렴성을 보이며 현지인들의 신망을 얻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리잔수는 또 산시에 재임하는 동안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이 주도한 현지 혁명역사에 관심을 갖고 시진핑 가족들과 교류를 이어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이 가장 눈여겨본 것은 리 주임이 구이저우성 서기 재임 기간 추진한 빈곤 탈출 및 교육 개선사업에 대한 열정이었다.

당시 구이저우는 경제, 교육, 투자환경에서 모두 전국 최하위를 기록 중이었다. 리잔수의 재임 기간에 구이저우성의 대학 입학률은 2009년 13.8%에서 2012년 25.5%로 늘어나 전국 평균인 30% 수준에 육박했다.

그의 재임기간 공업강성(工業强省) 전략은 근래 구이저우 경제가 고속성장하게 된 배경이 됐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사업을 유치하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제조업 육성에 치중했다.

이에 따라 구이저우성 경제규모는 2009년 3천912억 위안에서 2012년 6천852억 위안으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2011년 5월 중앙서기처 서기였던 시 주석이 구이저우 시찰에 나섰다. 리잔수는 모든 일정을 함께 하며 깊은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가 시 주석이 마음 속으로 리잔수를 자신의 '오른팔'로 낙점하기로 한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리 주임이 구이저우성에서 제시한 '생태문명 건설'은 시진핑 치국이정(治國理政·국가통치) 사상중 5위일체의 하나에 삽입되기도 했다.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왕후닝(王호<삼수변+扈>寧)과 함께 시진핑의 최측근 브레인이 된 리 주임은 시진핑의 해외순방에 항상 동행하며 둘의 관계는 더욱 강화됐다.

리 주임은 특히 링지화가 10년간 장악했던 중앙판공청의 철저한 쇄신에 나선 것도 시 주석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기간 중앙판공청 업무를 정비해 "청렴, 능력, 효율을 겸비한 당정 중추로서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의 모범이 됐다"는 평이 내려졌다.

지난 5년간 리 주임의 일처리가 침착, 신중, 노련했으며 특히 시 주석에게 지극히 충성스러웠고 사명감에 불타올랐다는 평을 받으며 리잔수는 왕치산과 함께 시진핑의 왼팔, 오른팔로 자리매김했다.

인민망은 시 주석이 지난 8월13일 "특별히 시간을 내" 중앙판공청을 순시하며 당지부 조직생활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리 주임의 상무위원 승진을 지지하고 있다는 뜻을 몸으로 보여줬다는 평이 나왔다.

joo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